빨려들기


 만화책 《유리 가면》을 읽는다. 그동안 숱한 사람들한테서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으나 딱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하던 작품이다. 아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기보다 ‘연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권수가 장난 아니도록 많다’는 말 때문에 섣불리 엄두를 못 냈다고 해야 옳다. 마침 올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책잔치에 나들이를 갔다가 ‘헌책방골목 나들이를 하던 날’ 책방에 온 권이 들어와 얌전히 꽂힌 모습을 보고는 안 살 수 없어 ‘헌책 값으로도 그야말로 센 값을 치르고’ 장만했다.

 처음에는 아이 엄마가 읽고, 아이 엄마가 애장판으로 7권쯤 읽을 무렵 아이 아빠가 따라 읽는다. 한가위를 맞이해 음성 어버이 댁에 찾아뵈는 길에 《유리 가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가 궁금하고 자꾸 떠오른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빨려든다. 1976년부터 그리는 작품이 사람을 이토록 빨아들일 수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1976년부터 그리는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만화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춤이든 노래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온누리에 나오는 작품이라 할 때에는 《유리 가면》과 같이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겠다고 느낀다. 아니, 다시금 고쳐 생각한다면, 《유리 가면》은 《유리 가면》대로 아름다우며 멋스러운 깊이를 품어야 하고, 우리들이 내놓는 작품은 우리들이 내놓는 작품다운 아름다움과 멋을 품어야 할 테지.

 내가 쓰는 글과 내가 찍는 사진이란, 다른 누구보다 나 스스로 빨려들 글이어야 하고 나부터 빨아들일 사진이어야 한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한 권 두 권 새로운 책을 만나는 가운데 ‘온누리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이 있고, 내 둘레에는 이와 같이 멋스러운 삶이 있어 고맙다’고 노상 깨닫는다. 한 가지라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날 수 있으니 고마운 나날이요, 하나라도 멋스러운 삶을 마주하며 눈물젓거나 웃음지을 수 있으니 즐거운 하루이다. (4343.9.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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