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과 글쓰기
뒷간이 집 바깥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밤에 뒷간을 가자면 어두운 길을 살살 짚으며 걸어가야 합니다. 뒷간이 집 안쪽에 붙은 여느 도시 살림집에서는 그냥 전기불을 켜고 슬슬 걸어가면 되겠지요.
하품을 하며 문을 열고 집 바깥으로 나옵니다. 깜깜한 밤하늘을 등에 지고 뒷간으로 갑니다. 둘레에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시골 하늘을 살짝 올려다봅니다. 큰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였는데 모처럼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해맑은 밤하늘입니다. 마구 쏟아질 듯하다는 옛날 옛적 빛나는 별빛 하늘은 아니지만, 숱한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마저 자동차를 몰고자 하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며 더 큰 아파트에서 누리려 하는 한국땅인 만큼, 몽골이나 티벳이나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산티아고 같은 데처럼 아리따운 밤하늘을 마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토록 더러운 물질문명을 꼭꼭 움켜쥔 채 날마다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내놓고 있는 이 땅에서 무슨 아리따운 밤하늘을 찾을 수 있겠어요. 이 땅에서는 시원하고 해맑은 샘물 또한 섣불리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케케묵고 얼빠진 채 살아가는 이 나라라 할지라도 밤하늘은 밤하늘이요, 별이 가득한 하늘은 별이 가득한 하늘입니다.
우리 집은 바깥에 뒷간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밤하늘 별빛을 헤아리면서 살아갑니다. 어두운 밤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어둡지 않은 밤을 실컷 즐기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담을 텐데, 어두운 밤이 일찍부터 찾아오는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저로서는 저녁 일고여덟아홉 시이면 이내 잠자리에 든 다음 희뿌윰히 밝아오는 새벽 서너덧 시이면 으레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담습니다. (4343.8.9.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