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살림집 마지막 빨래를 앞두고


 인천살림집을 옮기기까지 며칠 안 남았다. 오늘 저녁 거의 마지막으로 짐을 다 꾸려 놓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날씨를 보아 가며 충주 산골마을로 들어간다. 부엌 살림을 거의 다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고, 이불은 오늘 덮을 담요 한 장만 남기고 모두 이불 가방과 큰 보따리에 담아 묶었다. 새 살림집으로 옮기며 흩어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책 겉그림을 스캐너로 긁고 이래저래 갈무리를 마쳐서 끈으로 묶으면 이제는 더 묶어 놓을 살림거리가 없다. 바야흐로 마지막 빨래 몇 점을 해 놓으면 집 옮길 일손은 마무리가 된다. 밀린 ‘필름 긁기’를 하려고 스캐너에 필름을 앉히고 짐을 꾸리며 생각한다. 짐을 꾸려서 옮기려 하면 이동안 다른 일을 거의 못할 뿐 아니라 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렇다고 힘들거나 벅찬 적은 아직 없다. 이제 이 살림집하고는 헤어지는구나 싶은 아쉬움이 새록새록 솟고, 또다시 한 곳에서 오래오래 깃들지 못하고 옮겨야 하는구나 싶은 서러움이 슬며시 꾸물거리기는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만한 살림집 보증금을 내고 달삯을 치르며 버티는 데에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까. 도서관 달삯은 지난달 치와 이달 치를 보증금에서 뺀 다음, 남은 보증금으로 짐차와 사다리차 부를 돈으로 써야 하는데. 살림집 달삯도 매한가지이고. 집식구 앞에서는 웃고, 바깥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웃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빠듯하고 힘겨웠던 살림 꾸리기였다. 이제 다달이 70만 원씩 내던 달삯 짐을 훌훌 털어낼 수 있으니 얼마나 후련한지 모른다. 말이 70만 원이지, 느긋하게 돈 벌며 이름값 떨칠 수 있는 자리를 모두 마다 하고 골목동네 한켠에서 쭈그리고 앉아 글쓰고 사진찍고 애랑 복닥이며 지내는 가운데 달삯 치르고 책값 치르며 사진값 치르는 가운데 몸아픈 옆지기를 돌볼 여러 가지를 장만하는 데에 들어갈 돈을 다달이 벌어들이기란 참 터무니없는 노릇이다. 그야말로 억지스럽고 고단한 일을 웃음을 지으면서 해야 할 뿐더러, 내 삶에서 내가 붙잡으며 일구어야 할 일거리를 뒷전으로 젖혀 놓아야 할 때가 얼마나 잦았는가. 이제 차분하게 지난 나날을 돌아보노라면 고되고 힘들던 나날이라 해서 그때에나 이때에나 고되고 힘들기는 했어도 싫거나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고될 뿐이요 그예 힘들 뿐이다. 고되다고 나쁘지 않으며 힘들다고 슬프지 않다. 고된 일이니 아이구야 고되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힘드니까 어이구 힘들어 죽겠네 하고 허리를 토닥인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이야 참 좋구나 하고 받아들이며, 기쁜 일이 있으면 더없이 기쁘네 하면서 받아들인다. 어여쁜 골목동네 모습을 보며 그야말로 어여쁘네 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줄거리 담은 책을 읽으며 가없이 아름답군 하고 느끼며 책장을 넘긴다. 맨 처음 했던 빨래라 해서 더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란 없고, 마지막 하는 빨래라 해서 남달리 새삼스러운 느낌이란 없다. 똑같은 빨래이다. 이제 이곳에서는 더 빨래할 일이 없겠네 하고 느낀다. 자, 좀 숨을 돌리면서 쉬자. 땀 꽤나 뺐으니까 한 번 찬물로 씻고 보리술 한잔 걸친 다음 새로 힘을 내어 마지막 짐을 다 싸 놓고 새벽녘에 잠들자. (4343.6.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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