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 2


 언제나 내 몸뚱아리가 되며 늘 함께하던 사진기가 망가진 어제 하루는 도무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었다. 슬픈 마음으로 잠들다가 깨어난 아침, 어쩔 수 없이 이래저래 빚을 내어 새 사진기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 장만할 사진기 값이 106만 원이요, 메모리카드를 두 장쯤 더 사야 하니 6만 원이 더 든다고 하는 돈셈을 하면서 괜히 울컥 성이 난다. 디지털사진기는 한 대 있는데 거의 비슷한 기능으로 새로 사야 할 뿐 아니라, 같은 디지털사진기를 사더라도 어차피 들어야 할 돈이면 훨씬 좋은 사진기를 살 돈을 모을 수 없는 때에 사야 하는데다가, 그토록 꿈에 그리고 있는 파노라마사진기를 사는 일은 멀리멀리 물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히유. 한숨을 몰아쉰다. 배가 꾸물꾸물하다. 뒷간에 가서 똥을 눈다. 똥을 누며 《내 멋대로 사진찍기》(들녘,2004)라는 책을 읽는다. 방으로 돌아온다. 하아. 다시 한숨을 몰아쉰 다음 생각을 추스른다. 망가진 디지털사진기를 고칠 수 있고, 고치는 값이 크게 들지 않는다면, 이 또한 나쁘게만 여기지 말자고 다짐한다. 고쳐 놓은 사진기는 아기랑 애 엄마가 쓰는 사진기로 삼으면 된다. 내 사진기는 그야말로 내 몸뚱이가 되어 낡고 닳도록 땀흘려 주었으니, 망가진 곳을 고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곱게 떠나 보내는 일이 옳다고 생각한다. 참말, 디지털사진기가 이렇게 낡고 닳아서 스스로 망가지는, 그러니까 숨을 거두도록 쓰는 사람이 우리 누리에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아니, 있을까? 디지털사진기뿐 아니라 필름사진기마저 하도 자주 많이 꾸준히 쓰다 보니 제풀에 지쳐서 망가져 버리지 않았던가. 내가 사진기를 어디 떨어뜨리거나 부딪혀서 망가뜨리지 않는다. 워낙 오래 많이 찍다 보니까 스스로 망가진다. 내가 타고다니던 자전거는 두 대가 제풀에 겨워 낡고 닳아 더 탈 수 없다. 내가 무슨 돈이 넘치거나 우악스러운 사람이 아닌데, 쓰는 기계들은 사람처럼 굳은살이 박힌다든지 더 단단해진다든지 할 수 없다. 기계는 쓰는 만큼 낡고 닳아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내 주어야 한다.

 나를 탓할 까닭 없고 기계를 탓할 까닭 없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흐름이자 결이다. 그동안 살아내면서 자전거 두 대가 맛이 가 버린 일이라든지, 어느덧 필름사진기 한 대와 디지털사진기 한 대가 스스로 목숨이 끊어진 일이라든지, 짜증을 부리거나 골을 부리거나 할 일이 아니다. 자전거하고 사진기한테 고맙고 미안했다며, 여태껏 참으로 즐거웠고 반가웠다며, 고개숙여 인사를 할 노릇이요 절을 하고 향을 하나 피울 노릇이라고 여겨야지 싶다.

 내 몸이 되어 주던 사진기야, 이제는 푹 쉬렴. 느긋하게 쉬고 홀가분하게 누우렴. (4343.6.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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