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 앤 뽀또그라피
진동선 지음 / 시공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은 사진을 만나고 싶었을까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1] 진동선, 《노블 앤 뽀또그라피》


- 책이름 : 노블 앤 뽀또그라피
- 글 : 진동선
- 펴낸곳 : 시공아트 (2005.6.29.)
- 책값 : 1만 원


 (1) 배에서 갈매기 사진 찍는 사람


 옆지기와 아이하고 배를 타고 영종섬을 다녀왔습니다. 인천사람한테 영종섬은 고작 10분 거리로 배를 타고 들어가 볼 수 있는 몹시 가까운 섬입니다. 저는 이 배를 1994년에 마지막으로 타고 2010년에 탔으니 열여섯 해 만에 탔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뻔질나게 탔던 배인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꼭 한 번 타고는 다시 탈 일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저는 이무렵부터 인천을 떠나 살았고 인천으로 돌아올 일이 퍽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배삯 250원으로 오간 영종섬인데, 아버지가 장봉섬에서 분교장으로 일하셨기에 중학생 때에는 어머니와 함께 다달이 아버지를 뵈러 배를 타러 장봉섬에 가고자 먼저 영종섬으로 들어가서 버스를 타고 영종섬 끝까지 간 다음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 길을 들어가곤 했습니다.

 지난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에는 ‘새우깡 같은 과자를 갈매기한테 던지는 일’은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러나 다시금 곰곰이 떠올리면 몇몇 분들은 갈매기한테 과자나 빵부스러기를 던졌습니다. 다만, 섬사람이라든지 우리 식구처럼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사람들은 과자이든 빵부스러기를 던지지 않습니다. 던질 만큼 과자나 빵을 넉넉히 사먹을 수 있지도 않았지만, 그럴 겨를이나 기운이 없었으니까요. 갈매기한테 과자나 빵부스러기를 던지는 사람은 ‘어쩌다가 배를 탄’ 사람이거나 ‘처음 배를 탄’ 사람이거나 ‘놀러다니고자 배를 탄’ 사람들뿐입니다.

 열여섯 해 만에 영종섬 들어가는 배를 타는데, 배에 탄 사람은 몇 없습니다. 젊은 아가씨 둘이 보입니다. 두 사람은 바지런히 새우깡을 던지고 갈매기 무리는 이들 가까이 붙어서 새우깡을 얻어먹으려고 합니다. 이윽고 중국 관광객이 스무 사람 남짓 탑니다. 이들도 젊은 아가씨를 좇아 과자를 갈매기한테 던집니다.

 갈매기한테 새우깡이나 과자를 던지는 분들은 다들 손에 사진기를 들고 있습니다. 새우깡 던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달라붙는 갈매기를 사진으로 찍으며 달려드는 갈매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이분들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 살짝 헤아려 보고는 지나칩니다. 이분들한테 갈매기는 어떤 목숨일까 한동안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돌립니다. 갈매기들이 저 새우깡이나 과자부스러기를 먹으며 목구멍이 막히거나 속이 더부룩해지는 줄을 하나도 살피지 않으니까 이렇게 바보스레 새우깡을 던지고 과자부스러기를 던지고 하겠지요. ‘새우깡 받아먹는 갈매기는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목구멍이 막혀서 죽습니다’ 하고 알려준들 알아먹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알아먹을 관광객이었다면 조용히 갈매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 무얼 던진다고 생각하지 않겠지요. 던져 주려면 싱싱한 날물고기를 던질 노릇입니다.

 아기를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가 앉아 밥을 먹이며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쩌면 사진 찍는 사람들한테는 갈매기 사진을 찍자면 옆에서 새우깡을 던져 주어야 할 노릇입니다. 그래야 새우깡을 받아먹으려는 갈매기가 아주 가까이에서 날갯짓을 멈춘 채 날며 사진으로 그럴싸하게 찍혀 줄 테니까요. 바닷바람을 가르며 멈추어 있는 날갯짓을 사진으로 가까이에서 찍기에는 ‘뱃전에서 새우깡 던져 주기’를 할 때만큼 좋은 때가 없을 테니까요. 아주 적은 돈을 들이고도 멋지다는 사진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새우깡을 던지면서 갈매기가 무리지어 달려드는 모습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 사진 한 장이 얼마나 즐겁거나 멋진 추억이 될까 궁금합니다. 다른 곳에 놀러가서도 이와 비슷한 얼거리로 사진을 찍고 사진을 남기며 사진으로 추억을 만들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2) 소설과 만나지 못한 사진말 《노블 앤 뽀또그라피》


 사진평론을 하고 있는 진동선 님은 《현대사진가론》(태학원,1998), 《사진의 메카를 찾아서》(태학원,2000), 《한 장의 사진미학》(사진예술사,2001), 《현대사진의 쟁점》(푸른세상,2002), 《진실의 시뮬라크르》(푸른세상,2002), 《영화보다 재미있는 사진 이야기》(푸른세상,2003), 《사진과 역사적 기억》(눈빛,2003), 《시간의 풍경》(눈빛,2004),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아카이브북스,2005), 《사진, 영화를 캐스팅하다》(효형출판,2007), 《사진가의 여행법》(북스코프,2008), 《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비온후,2009), 《좋은 사진》(북스코프,2009), 《그대와 걷고 싶은 길》(예담,2010)과 같은 책을 꾸준하게 써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사진 이야기를 널리 펼치면서 나누는 몫을 단단히 맡고 있습니다. 《노블 앤 뽀또그라피》는 2005년에 내놓은 책으로, ‘사진을 만난 소설’ 또는 ‘사진을 다루며 이야기를 풀어 가는 소설’을 하나하나 들면서 사진이 우리 문학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흔히 ‘영화가 만난 사진’이라든지 ‘영화와 어우러지는 사진’을 다루는 사람은 있지만, ‘소설이 만난 사진’을 다루는 사람은 진동선 님을 빼고는 거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쟁이 가운데 문학을 즐겨 읽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사진쟁이 가운데 ‘책을 가까이하면서 내 이웃 삶을 들여다보거나 헤아리거나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 나만의 시선, 나만의 세상보기. 신현림은 사진으로 자신을 말한다. 세상과 나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해서 나를 보는 열린 시선을 갖는다 … 기억을 위한 이미지, 삶의 증거로서의 사진. 구효서는 소설 속에서 사진으로 그리움과 상처를 뽑아내고 보듬는다 … 윤대녕이 바라본 사진은 ‘거울’과 ‘창’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에게 사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 이청준은 사진이 어떻게 미래를 찍을 수 있는지를 문학적 행위로 완성한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행위만 있을 뿐 해석은 나중에 행해지기 때문에 사진은 언제나 미래라는 관점을 보여준다 … 작가에게 사진은 눈의 기억과 동등한 무게로 자리한다. 눈이 본 역사를 사진도 보았기를 바란다. 눈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사진이 더욱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상징적 표현을 담아낸 문학 작품이 바로 김소진의 〈동물원〉이다 ..  (22, 24, 75, 93, 160, 173쪽)


 진동선 님은 《노블 앤 뽀또그라피》에서 신현림, 구효서, 안도현, 김원일, 김인숙, 윤대녕, 최일남, 이청준, 공지영, 조세희, 신경숙, 김주영, 남상순, 하성란, 박일문, 전경린, 김소진, 배수아, 한강, 함정임, 이렇게 스물한 사람 작품을 들춥니다. 소설쟁이 이름을 살피면 하나같이 나라안에 손꼽히는 분들이요, 이분들이 모두 당신들 소설에서 ‘사진을 만났다’고 하면 뜻밖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사진이라고 남다른 문화이거나 예술이지 않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노래를 듣고 춤을 즐기며 영화를 보듯,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쟁이만 사진을 찍으란 법이 없습니다. 쟁이만 그림을 그리고 쟁이만 글을 쓰란 법이 없습니다. 대학교수라야 글을 쓰겠습니까. 중학교만 마친 분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와야만 사진을 찍겠습니까.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 없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쥘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안에 이름난 소설쟁이 스물한 분 작품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만날 수 있는 ‘사진을 만난 소설’이요, ‘사진이 만나려는 소설’인 셈입니다. 우리한테는 사진과 소설이 만난 이야기를 따로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사진과 소설이 ‘만나서 이루어 내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짚으면서 우리 삶을 다시금 들여다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뜻이 있고 값이 있으며 사랑과 믿음이 있는 셈입니다.


.. 찰나의 예술인 사진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상처가 되고, 눈물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진의 특성이다 …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슬퍼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되찾을 수 없는 육신,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이 그것이다 … 사진은 실재할 수 없는 욕망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진 앞에서 현실이 될 수 없는 욕심에 놀라 미끄러진다 ..  (32, 45, 137쪽)


 진동선 님은 소설을 하나하나 들추면서 이 작품 어느 대목에서 사진이 나타나고, 이 작품을 통틀어 사진이 어떻게 녹아들고 있는가를 밝힙니다. 소설쟁이마다 사진을 당신 삶이나 문학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껴안는지를 읽어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를 놓칩니다. 《노블 앤 뽀또그라피》에 나오는 소설쟁이 스물한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사진을 말하’고자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들 스물한 사람뿐 아니라 소설을 쓰는 어떠한 사람들도 ‘사진을 말하’려는 뜻에서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소재나 주제가 ‘사진’이 될 수 있다 하여도 사진을 말하는 소설이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소설이든 오로지 하나, ‘삶을 말하기’입니다.

 이리하여, 이 책 《노블 앤 뽀또그라피》에서는 크나크게 아쉽다고 느낄 대목이 자꾸 드러납니다. 진동선 님은 “찰나의 예술인 사진”이라고 틈틈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사진은 조금도 “찰나의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찍히는 ‘기계 도구’로 바라보기에는 사진기란 아주 잠깐인 모습을 찍는 연장이라 볼는지 모르나, ‘아주 잠깐’을 찍고자 아주 기나긴 나날을 기나긴 생채기와 웃음을 부대껴야 합니다. 삭이고 되뇌고 생각하고 느끼며 어루만지지 않고서는 아무런 사진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고 모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종이조각에 끄적인다고 모두 글이 되지 않습니다. 겉보기로는 책이요 영화요 옷이요 집이요 사람이요 밥이요 할는지 모르지만, 속보기로는 책다운 책이 아니거나 영화다운 영화가 아니거나 옷다운 옷이 아니거나 집다운 집이 아니거나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거나 밥다운 밥이 아닌 때가 아주 잦습니다. 안타깝게도, 진동선 님 스스로 너무 멋을 부리며 읊는 말마디 때문에 이 책에서는 사진이 사진으로 빛을 못 보곤 합니다. 소설 하나하나로 살폈을 때에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이요, 이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사진으로 드러나는 삶자락을 옹글게 잡아채지 않다 보니, “사진은 실재할 수 없는 욕망의 그림자”라느니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사진의 주인공은 미소 짓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 한 장의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이미지라는 것도 알고 보면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보이지 않는 약속과 같다 … 어느 민족의 영정사진도 슬프거나 우는 모습이 없다. 약속이나 한 듯 행복한 모습,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다.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사진의 주인공은 미소 짓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 사진을 알아봄으로써 잊혀진 시간을 되찾고 존재를 되찾는다 ..  (41, 81, 120쪽)


 사진은 우리 삶을 담습니다. 만듦사진이라면 ‘실제로는 없는 모습’을 담는다 할 만할 텐데, ‘실제로는 없는 모습’을 만들자면 ‘실제로 있는 모습’을 알아내거나 찾아내어서 뒤틀거나 비틀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찍는 사진이든 없는 모습을 만드는 사진이든 모두 우리 ‘실제로 꾸리는 삶’을 느끼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진은 “실재할 수 없는 욕망의 그림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진은 바로 “참말 나 스스로 아프거나 기쁘게 부대끼는 삶을 담아내는 발자국”입니다. 이러한 발자국은 욕망이 될 수 있고 꿈이 될 수 있으며 부질없는 몸짓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될 수 있고 미움이 될 수 있습니다. 웃음이 될 수 있으며 눈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떠하게 자리매김하거나 뜻매김을 하든 사진은 우리 삶입니다.

 영정사진은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사진의 주인공은 미소 짓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은 덧없는 중얼거림과 같습니다. 괴로운 삶이면 괴로운 삶이 영정사진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가난한 삶이면 가난한 삶이 영정사진에 그예 스밉니다. 다만, 괴롭거나 가난하다고 해서 “나쁜 삶”이 아닙니다. 괴롭거나 가난해야지만 “좋은 삶”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괴롭거나 가난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괴로우면서도 웃는 삶이 영정사진에 담기고, 부자이면서 잘 먹고 잘 지냈다는 삶이면서도 슬프게 우는 모습이 영정사진에 담깁니다.

 《노블 앤 뽀또그라피》 맨 마지막 쪽 맨 마지막 글월에 이르러, 진동선 님은 “결정적 순간이란 없다”고, 바로 “작고 작은, 흔하디흔한, 하찮은 삶의 순간의 부활”이 소설이요 사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마지막 대목 마지막 글월은 《노블 앤 뽀또그라피》라는 책에서 214쪽에 걸쳐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모두 뒤엎습니다. 215쪽짜리 책에서 214쪽에 걸쳐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한낱 겉멋이었음을 스스로 밝힙니다. 진동선 님 스스로 소설쟁이 스물한 사람 작품을 들여다보며 ‘소설이 만난 사진’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시나브로 ‘따로 소설이 사진을 만나려 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거든요. 아니, 진작에 깨닫고 있었으나 일부러 숨기고 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소설이든 사진이든 그저 우리 사람들 삶을 담는 몸짓이나 손길’이라고 밝히고 있는지 모릅니다.


.. 사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 다른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사진은 찍은 사람의 감정, 혹은 찍힌 사람의 인생의 부분이다 … 인간의 눈은 카메라의 눈과 다를 게 없다. 사진의 눈도 육신의 눈처럼 현실 한가운데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본다 … 문학과 사진, 어떤 창에도 결정적 순간이란 없다는 말은 진정한 삶이란 결정적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영원성의 순간도 작고 작은, 흔하디흔한, 하찮은 삶의 순간의 부활이어야 한다 ..  (96, 136, 215쪽)


 책을 꾹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진동선 님이 처음부터 이 마지막 글월에서 보여주려던 생각을 보여주었다면 《노블 앤 뽀또그라피》라는 책은 아주 다른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진동선 님은 처음부터 바로 이 마지막 글월을 보여주면서 ‘소설이 만난 사진’이든 ‘사진이 만난 소설’이든 하는 허울에서 벗어나 사진은 무엇이요 소설은 무엇이며 우리 삶은 무엇인가 하는 참으로 깊으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처음부터 진동선 님 스스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나섰다면 《노블 앤 뽀또그라피》를 쥐어든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헤아리면서 더 깊고 살가우며 따뜻한 마음밭을 일굴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뿐 아니라, 이 책을 쓴 진동선 님 스스로 당신 마음밭을 더욱 알차고 아름다우며 기쁘게 추스르거나 다스릴 길을 찾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고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나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며 좋아하기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연극과 영화를 합니다. 우리는 나 스스로 아름다움이 사랑스럽고 멋스러우니까 농사를 짓든 운전대를 쥐든 두 다리로 걷든 하면서 이 땅에서 땀흘리며 부대끼고 살아냅니다.

 사진이란 머나만 남쪽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머나먼 동쪽나라에도 있지 않습니다. 사진이란 바로 우리 집에 있고 우리 이웃한테 있고 우리 아이한테 있으며 우리 동무와 우리 살붙이 누구한테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이란 바로 삶이기 때문입니다. 소설로 빚어내는 이야기란 다름아닌 우리 삶에서 비롯하고, 시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모두 우리 삶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사진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상업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무슨 사진이든 모두 우리 삶에서 이야기를 퍼올립니다.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얼마나 진득하게 붙잡거나 마주안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이 아름답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도록 일구면 됩니다. 사진이 훌륭하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훌륭히 가꾸면 됩니다. 사진이 멋스럽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멋스럽게 돌보면 됩니다. 사진이 사랑스럽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스레 어루만지면 됩니다. 사진이 소설을 만나서 우리 삶으로 뿌리내리는 발자국을 좇으려던 진동선 님 손자취가 여러모로 아쉽고 안쓰럽다고 느끼며 《노블 앤 뽀또그라피》라는 책 하나를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아무쪼록 2011년 2012년 …… 2020년으로 고이 이어지는 진동선 님 삶자락에서 사진 하나 알뜰히 뿌리내리면서 아름다이 자리잡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사진을 만나고 싶었던 소설들이 아닌, 삶을 만나고 싶고자 사진하고 함께 길을 걸었던 소설들일 뿐입니다. (4343.6.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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