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너지 시장 - 새로운 에너지 사회의 모습
이이다 데쓰나리 지음, 푸른아시아 옮김 / 이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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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자원도 ‘돈이 되어야’ 하는가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2] 이이다 데쓰나리 엮음, 《자연에너지 시장》


 저한테는 운전면허증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기도 하나, 저로서는 자가용을 누가 거저로 준다 하여도 운전면허증이 없기 때문에, 이 자가용을 몰 수 없습니다. 누가 자동차 한 대를 준다 한들 받고픈 마음이 없기도 합니다. 자가용을 몰아야 할 만한 일이 있다고 느끼지 않으며, 아이와 옆지기와 저 셋이 자가용을 타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해서 더 느긋하거나 즐거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고픈 곳이 있으면 두 다리로 걸어서 가면 됩니다.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를 얻어타고 움직이면 됩니다. 아이가 좀더 자라면 자전거에 태워 함께 달리면 됩니다.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한테 자가용이란 거의 ‘생활필수품’처럼 여기는 한 가지입니다만, 제 눈길과 삶결로 바라볼 때에는 ‘사치품’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자가용을 꼭 타야 할 만한 사람들이 꼭 장만해서 탄다기보다, 남들이 타고 있으니 따라서 탄다든지, 내 몸을 즐겁게 움직이는 일하고 동떨어지면서 탄다든지, 남 앞에서 자랑하거나 얼굴 세우기로 탄다든지, 이냥저냥 세상물결에 휩쓸리면서 으레 타야 하거니 하고 바라보는구나 싶습니다.

 어릴 적에는 ‘기름을 안 먹는 깨끗한 자동차’가 나온다면, 그때에 가서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아주 손쉽게 운전면허증을 딸 길이 있었으나 굳이 따지 않았습니다. 동무들은 면허시험 문제집을 사서 달달 외운 다음 필기에 붙고(잘 모르겠으면 3번 찍기를 하면서), 오토바이를 좀 몰아 본 손맛으로 실기에 붙곤 했습니다. 준비 한 번 없이 실기를 보고도 붙은 녀석들이 꽤 많았습니다. 나중에 실기시험이 까다로워진다면서 그무렵에 얼른 따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더욱 운전면허증을 따는 일이란 부질없다고 느꼈습니다.

 왜 차를 몰아야 하는가를 먼저 깊이 생각할 노릇이요, 차를 몰아야 한다면 어떤 차를 몰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따질 노릇입니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 때에 쓰고자 미리 면허증을 딴다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직 제대로 마음닦이가 안 된 사람들한테 차열쇠를 건네는 일은 대단히 근심스럽고 무시무시한 노릇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는 자동차 부속과 교통법을 다루는 지식뿐 아니라, 차와 사람이 올바로 어우러지는 흐름을 함께 익히고 읽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버젓이 ‘학교 앞 길’임에도 경적을 울리며 싱싱 달리는 버르장머리없는 운전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걷는 길에 차를 올려놓고는 볼일을 보러 다니는 짓궂은 운전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짐을 실어서 나를 일이 있지도 않은데 골목길까지 자동차 머리를 들이미는 괘씸한 운전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몇 미터쯤 걷기 싫어 다른 자동차와 숱한 사람한테 피해를 끼치는 나쁜 운전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가 누리는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은 석유 등 화석에너지를 대량 소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  (78쪽)


 새로운 자동차와 함께 새로운 자전거가 쏟아져나옵니다. 요즈음은 자동차꾼 못지않게 자전거꾼이 제법 늘었습니다. 자전거로 살아간다는 분이 제법 느는 한편, 몸을 생각하고 기름값을 줄이며 ‘자전거 모임’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즐거움을 누리는 분이 퍽 늘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즐기는 자전거꾼 가운데에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전거를 마련하면서 ‘나 혼자한테는 좋을는지 모르나 다른 이웃한테는 좋을 수 없는’ 매무새를 보여주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아무래도 자전거이든 자동차이든, 이와 같은 탈거리를 내 손에 쥐기 앞서 ‘이러한 탈거리를 내가 왜 타야 하고, 탈 때에는 어떻게 타야 하는가’를 곰삭이는 마음그릇을 제대로 닦지 않은 탓입니다.

 깊이 파고들어 보면, 우리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아니, 우리네 학교는 아이들한테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치려는 마음이 없는지 모릅니다. 누구나 곱고 애틋한 목숨 하나를 선물받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지 않고, 더 높은 점수를 얻어 더 이름값 있는 대학교로 갈 수 있도록 밀어붙이는 데에만 매달리는 학교 틀거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됨을 갈고닦는 학문이 아닌, 시험점수 잘 따는 입시기계로 내모는 교과서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허접한 교과서라 할지라도 교사들이 슬기로우면 되는데, 교사 또한 스스로 쇠밥그릇 월급쟁이에 머물면서 신나게 자가용을 몰기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현재 대부분의 목질 연료는 임업과 임산업의 부산물로 생산되고 있고, 최대 공급량은 주산물의 생산량에 따라 결정된다. 목질 연료의 공급을 계속적으로 늘리는 유력한 방안은 성장이 빠른 에너지 수목을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 나무를 모으거나 마름질해 재목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계를 사용하려면 일정 정도의 작업 규모가 확보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사람의 힘으로 처리했던 시대에는 규모에 따른 생산성의 차이가 적고 소규모 생산으로도 살아남을 여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기계화 시대에는 작업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소유자가 다른 산림을 몇 개의 지역으로 묶어서 솎아베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  (56, 73쪽)


 흔히들 자동차를 몰 때에 ‘쾌적하고 편리한 현대 생활’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빨래기계를 쓰고 텔레비전을 보며 큰 냉장고를 갖추는 한편, 갖가지 전기제품을 집안에 가득가득 갖추어야 비로소 ‘문명 혜택을 받고 즐거이 꾸리는 삶’을 펼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참말로 ‘신나고 즐겁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은 자동차를 비롯한 전기제품 들을 장만하는 데에 있을까 궁금합니다. 빨래기계를 안 쓰고 손을 쓰면서 두 손에 온통 물집과 꾸덕살이 잡히던 예전 어르신들한테는 신나거나 즐겁거나 깨끗하거나 아름다울 모습이 하나도 없었을까 궁금합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그날그날 저잣거리로 찾아가 먹을거리를 장만한 다음 손수 손질하여 차리는 밥상에는 즐거움이 없고, 자가용 몰고 ㅇ마트 ㄹ마트로 내달려 짐칸 가득 비닐봉지로 꾸역꾸역 채워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냉장고를 꽉꽉 채워 아무 때나 꺼내어 차리는 밥상이 훨씬 즐거울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덜 써야 즐거운 삶일까요. 우리는 우리 돈을 더 써야 즐거운 삶인가요. 우리는 우리 마음을 덜 써야 기쁜 삶일까요. 우리는 전기와 물과 자원을 더 써야 기쁜 삶인가요.

 제가 사는 집에서 걸어가 5분 안짝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한 병을 사면 1700원입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 자가용을 몬다면 5분쯤 달려 ㅇ마트에 닿을 수 있고(저는 자가용이 없으나 차를 타면 이쯤 걸릴 듯합니다), 이곳에서 보리술 한 병에 1530원쯤만 치르고 살 수 있습니다. 구멍가게에서 보리술을 산다면 두어 병만 사는데, ㅇ마트에서는 ‘값이 퍽 싼’데다가 ‘다른 덤을 끼워 주’고 있으니 여러 병을 사고야 맙니다. 그러면, 이렇게 자가용을 모는 현대물질문명을 누리면서 170원을 아끼는 만큼 나한테 더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할 만한지요. 보리술 열 병을 사면 1700원을 아끼니 한 병을 더 사고도 170원이 남는다고 셈할 만한지요. 그러면, 자가용 한 대 값이며, 자가용을 10분 동안 굴리며 드는 기름값이며, 자가용이 다녀야 하는 길을 닦는 데 들이는 사회간접자본이며, 자가용에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더럽힌 우리 삶터이며 ……는 어찌하지요.


.. 풍력발전은 특성상 송전선 등을 포함하여 아주 넓은 용지를 필요로 한다. 용지 확보 기간이 사업 기간에 맞는가, 사업 자산으로서 담보 설정이 가능한가, 토지 소유자의 수가 많은 경우에 원만한 합의 형성이 가능한가 등이 요점이다. 중요한 인프라의 하나인 송전선의 거리가 길다는 것은 경제성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 줄어드는 위험이 아니라 사업 성패의 근간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바람직한 조건을 계약에 명기해야 한다 … 소비자에게 전기란 ‘송전선을 통해 일률적으로 공급되는 것으로 그 발전 방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전력 공급이 오랫동안 지역 독점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전기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 공급이 첫 번째 사명이 됐다. 이런 이유로 더욱 소비자에게 전력을 차별화하여 제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  (96, 128쪽)


 《자연에너지 시장》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석유도 자연에서 나오고 가스도 자연에서 나온다 하겠으나, 이들은 화석에너지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똑같이 자연에서 얻는다 하지만, 자연에서 태어난 목숨이 수만 수십만 수천만 해에 걸쳐 썩고 삭아서 이루어진 자원이기에 자연에너지 아닌 화석에너지이고, 이러한 화석에너지를 쓸 때에는 아주 마땅하게도 공해 문제가 불거집니다. 자연에너지란 공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언제까지나 쓸 수 있는 자원을 일컫습니다.

 우리 삶터뿐 아니라 이웃나라 삶터 또한 화석에너지가 거의 모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나라는 화석에너지를 접어 놓고 자연에너지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화석에너지가 나아가는 길은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는 길임이 뻔히 보이는데, 미련스레 화석에너지만 붙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쓰는 자원도 자연에너지가 되도록 고쳐야 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얼마나 더 많은 자원을 써야 하느냐’ 하고 생각하면서 내 삶을 바꿀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화석에너지에서 자연에너지로 돌아서는 모습 또한 우리 스스로 삶을 바꾸는 노릇이고, 화석에너지를 쓰는 부피를 고스란히 자연에너지로 돌리려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내 마음이 한결 아름답도록 가다듬고, 내 삶이 더욱 싱그럽도록 추스르며, 내 목숨이 사랑스레 빛나도록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니 어쩔 수 없이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써야 하지 않느냐는 마음과 삶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든 시골에서 지내든, 나와 내 이웃이 다 함께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즐겁게 찾고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나도 웃고 이웃 또한 웃는 삶을 찾고 싶습니다. 나부터 흐뭇하고 이웃 누구나 흐뭇할 곱고 빛나는 삶터를 일구고 싶습니다.


.. 사회적 관심이 국토 개발에만 쏠려 있던 시기에 자연보호를 외치기는 쉽지 않다 … 하지만 건강한 먹을거리처럼 자연보호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한 개념으로, 결코 유행 상품이 아니다 … 전문가라는 일부 사람들의 판단으로 에너지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비민주적인 정책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 원자력발전소의 입지 지역에는 원자력 정책을 정면에서 부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없다. 입지 시정촌의 다수가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교부금 등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자체의 주민은 같은 규모의 다른 지자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공적인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원자력 에너지의 유효성에 대한 시비를 과학적ㆍ논리적으로 냉정하게 논의하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 독일은 자연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치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앞서 나가는 추진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독일의 경우에도 자연에너지가 단번에 정부 차원의 정책이 된 것은 아니다. 자치의 현장에서 작고 구체적인 방안의 실천이 자연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최종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는 정책으로 성장하고 있다 ..  (263, 265∼266, 268쪽)


 《자연에너지 시장》이라는 책은 세계 자원시장에서 화석에너지 쓰임새를 줄이고 자연에너지 쓰임새를 늘리고자 하는 몸부림이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지를 통계와 표와 갖은 자료로 보여줍니다. 세계경제가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살림을 잘 지키면서 다 같이 살아남으려면 자연에너지 시장을 어떻게 새로 일구면서 키워야 하는가 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자연에너지를 넓히는 좋은 이야기와 자연에너지가 널리 뿌리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찬찬히 들려주고 있지만, ‘자원을 쓰는 우리 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오늘과 똑같은 매무새로 앞으로도 ‘끝없는 성장’만을 한다는 바탕에서 자연에너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에너지 시장》에서 말하는 자연에너지란,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먹는 삶으로 바뀌었’으니, 더 많은 사료를 더 빨리 먹여 더 크고 먹음직한 고기를 길러내는 공장이 되어 버린 축산업과 매한가지로, 에너지로 돌릴 수 있는 자연을 ‘사람 손을 써서’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흐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려는 몸짓이란 하나도 없이, ‘우리 수요’를 넉넉히 채워 줄 수 있는 자연에너지가 더 늘어야 한다는 쪽으로 마무리가 되고야 맙니다.

 올바르게 꾸리는 삶을 헤아리는 마음결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느냐는 이야기 하나가 빠진 《자연에너지 시장》입니다. 오늘날 우리 물질문명 터전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괜찮은가를 바라보는 눈썰미 이야기 하나가 담기지 않은 《자연에너지 시장》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어도 자연에너지를 말할 수야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사회는 ‘환경사랑’이라는 옷을 걸치면서 끝없이 쓰고 또 쓰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이니까요. 그런데 되살림과 되쓰기가 빠진, 허울좋은 ‘환경사랑’ 제품이 참말 환경사랑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터무니없이 많이 쓰는 화석에너지 높이에 맞추어 자연에너지 시장을 새로 열면 이 지구는 버틸 수 있습니까. 하기는, 자연에너지를 놓고도 ‘시장 개척’을 생각하고 ‘시장 개척 대책’을 생각하는 우리들로서는 자연에너지를 말하는 마당에서도 돈 걱정이 맨 먼저가 될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4343.2.7.해.ㅎㄲㅅㄱ)


 ┌ 《자연에너지 시장》(이후,2010)
 ├ 엮은이 : 이이다 데쓰나리
 ├ 옮긴이 : 푸른아시아
 └ 책값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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