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드리의 라무 높새바람 22
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2] 류은, 《바람드리의 라무》



 우리 나라만큼 말과 탈이 많은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고 느끼는 하루하루입니다. 나라를 이끈다는 분들이나 수십 수백 조를 벌어들인다는 큰 회사를 이끈다는 분들이나 여느 어른들이나 한결같이 ‘세계 시대’와 ‘지구 시대’와 ‘우주 시대’를 들먹이지만, 2010년을 코앞에 둔 오늘까지도 이 나라 어른들은 아직도 ‘중고등학생 머리길이와 치마길이’에 목매달고 있거든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아이들 머리길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겠습니까. 지구 어디에서 아이들 치마길이나 옷매무새를 놓고 시끌벅적 말이 많겠습니까. 아이들한테 술담배를 하지 말라지만 어른들은 술담배를 즐깁니다. 아이들이 멋모르고 사랑놀이를 하다가 아기를 배는 일이 나쁘다고 하면서, 어른들은 으레 바람을 피우고 두다리나 세다리를 걸치는 한편 성폭력을 일삼는 사람은 바로 청소년이 아닌 어른입니다. 우리가 일컫는 청소년범죄란 하나같이 어른범죄를 시늉하는 꼴인데, 어른범죄 푼수와 견주면 얼마 안 됩니다. 어른 스스로 푸름이 앞에서 옳고 바르게 살아가지 않으니, 푸름이가 보고 배우는 모습이란 범죄요 성폭력이요 욕지꺼리요 돈과 이름값과 주먹힘에 목매다는 꼴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공자님 말씀을 읊든 하느님 말씀을 읊든, 말로 읊는 매무새가 아닌 몸가짐으로 바르게 서며 살림을 꾸리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옛말에 맹자 엄마가 집을 세 번 옮긴다고 했는데, 맹자 엄마가 집을 옮겨다닌 까닭은 ‘아이들이 엉터리’라서 아니라, 마을 터전을 이루는 ‘어른들이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아랫마을이 어떻고 어디는 또 어떠하고 같은 이야기는 한결같이 어른들이 빚어냅니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잘못이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옮아갑니다. 우리 삶터는 어른들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고, 맑은 물과 깨끗한 바람이 사라진 우리 터전 또한 어른들이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시냇물을 손으로 떠 마시고 어떠했다고 추억어린 이야기를 들추지만, 우리 아이들한테도 시냇물을 손으로 떠 마실 수 있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당신들 추억만 떠듭니다. 아이들한테 자연이 있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우리 자연을 깨끗하고 싱그럽게 가다듬는 데에는 조금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더 큰 자가용을 뽑고, 가까운 길도 자가용을 끌며, 갖가지 전기제품과 물질문명을 마음껏 누립니다.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누립니다.


.. “…… 놓아 줄까요?” “허허허! 네가 잡았으니 결정도 네 몫이지.” 카알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야. 먼저 토끼는 내가 잡은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라무의 얼굴이 붉어졌다 ..  (18쪽)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이나 어른문학이나, 모두 어른이 빚어내는 문학입니다. 어린이노래나 청소년노래나 어른노래나 매한가지입니다. 어린이가 보는 영화나 연극이나 춤은 어떠합니까? 텔레비전에 나와 어른들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춤노래가 귀엽거나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는데, 아이들이 어른들을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코앞에 둔 자리에서는 ‘말잘못 하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어렵거나 딱딱한 말을 써서도 안 됨’을 살갗으로 느끼며 다소곳하게 제 몸가짐을 갈무리하는 어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코앞에 있어도 제대로 갈무리하지 않는 어른이 많고, 아이들이 눈앞에 안 보이면 아주 망나니처럼 막 나가는 어른이 많습니다.

 옳고 바를 뿐 아니라 아름답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어른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옳고 바르게 삶을 꾸리고 생각을 가누며 말글을 나누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는 어른이라서가 아니라, 청소년문학이나 어른문학을 하는 어른들은 삶과 넋과 말이 어떠합니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어른이라서가 아니라,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어른이나 여느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일하는 어른은 어떠하지요? 인터넷에서 ‘어린이 청와대 누리집’은 쉽고 바르고 알맞게 말글을 가다듬으려 한다면, ‘어른이 보는 청와대 누리집’은 어떠합니까? 아이들 앞에서 ‘문자 쓰기’를 하는 어른이 있겠습니까? 문자 쓰기를 하는 어른을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아이들 밥상에 얄딱구리하거나 화학약품으로 찌든 찬거리를 올릴 수 있습니까? ‘어른은 먹어도 돼’ 하는 마음을 ‘아이들도 한두 번 먹을 때에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지는 않습니까?

 말만 예쁘장하다든지, 이야기만 놀랍다든지, 짜임새는 판타지로 꾸민다든지, 줄거리는 웃음이나 눈물이 묻어나는 재미난 글감이라든지 한다고 해서 어린이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가르침이 있느냐 없느냐로 어린이문학을 가르지 못합니다. 어린이문학이란, 우리 어른이 아이들한테 물려줄 삶입니다. 우리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삶을 물려주고 싶은가 하는 꿈입니다. 우리 어른이 잘 살건 잘못 살건 꾸밈없이 헤아리면서 뉘우치거나 되씹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빛줄기입니다.


.. 유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진 (괴물) 로스를 막다가 돌아가셨어.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로스를 조종한 검은 복면이 다시 온다고 했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내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  (145쪽)


 밤새 밀린 일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마무리를 지을 무렵 아기가 깨어납니다. 아기는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빨래를 하는 아빠 곁을 종종걸음으로 따라 다닙니다. 말이 늦은 아기는 아빠 곁에서 놀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아빠는 빨래를 할 때에 아기보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몇 번이나 다그칩니다. 겨울철이라 빨래하는 씻는방이 춥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춥건 말건 곁에서 빨래하기를 지켜보며 물놀이를 하고파 하는데 못내 서운해 합니다. 아빠 눈에 걱정스러운 모습이 아이 눈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빨래를 마칠 무렵 아기는 잠이 듭니다. 새벽 여섯 시부터 깨어 있던 아기이니 아침 여덟 시 즈음에 잠들 만합니다. 또한, 우리 아기는 낮잠을 살짝 자거나 안 자고 넘긴 다음 저녁 열 시나 열한 시까지 엄마 아빠하고 놀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 아기하고 어울리고 있다 하여도 날마다 지칠밖에 없습니다. 귀엽고 예쁜 아기이지만, 늘 곁에서 돌보고 보듬어야 하니 고단할밖에 없습니다.

 옆지기는 때때로 말합니다. 아기가 이 나이에는 우리 곁에서 잠깐도 안 떨어지려고 하지만, 기껏 열 살까지 이런 삶이 이어가겠느냐고. 어른들이 아기는 열 살까지만 효도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아기(아이)가 효도한다는 일이란, 엄마 아빠 곁에서 안 떨어지면서 지낸다는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잠든 아기와 옆지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빠는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바깥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낮과 저녁은 엄마 혼자 아기와 씨름을 하며 듬뿍듬뿍 ‘효도를 받’아야 합니다.

 얼마 앞서 읽어낸 어린이문학 《바람드리의 라무》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바람드리에 사는 라무라고 하는 아이는 둘레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둘레 어른들한테서 좋은 모습도 보고 얄궂은 모습도 보면서 컸습니다. 좋은 모습을 보며 좋은 뜻을 품다가는, 얄궂은 모습을 보며 저 스스로도 얄궂은 쪽으로 기울듯 말듯 갈팡질팡하기도 합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어른들 곁에서 지내며 라무 스스로 착하고 아름다운 목숨으로 단단하게 뿌리내리기도 하지만, 못나고 뒤틀린 어른들 곁에서 시달리고 들볶이면서 자칫 마음이 다치거나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이때에 라무 앞에 좋은 동무가 나타나 주었습니다. 또래동무로 좋은 동무이든, 나이가 많은 어른동무로서 길동무이든.


.. 수야는 하르진에게 밥이 든 큰 그릇을 건네고 하르진의 손을 잡았다. 수야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이렇게 손이 따뜻한 사람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하다니…….’ ..  (213쪽)


 좋은 어린이문학이란 어떤 작품을 가리킬까 헤아려 봅니다. 널리 사랑받는 어린이문학이란 어떤 작품을 두고 이야기할까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어른이 아이한테 혼자 읽으라고 건넬 만한 작품이 되어야 할 테고, 어른이 아이한테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즐겁게 읽어 줄 만한 작품이 되어야 할 테지요.

 그러나, 읽는 재미나 즐거움에 앞서, 작품에 깃든 어른들 삶자락이 아름다워야 좋은 어린이문학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읽히는 기쁨과 보람에 앞서, 작품에 서린 어린들 넋과 얼이 싱그럽고 맑고 착해야 비로소 훌륭한 어린이문학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예부터 이원수 어린이문학이나 임길택 어린이문학이나 권정생 어린이문학을 높이 여긴 까닭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이오덕 어린이문학 평론을 알뜰히 여기며 고맙게 돌아보는 까닭 또한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을 창작하거나 비평을 하는 어른은, 말재주와 논리와 줄거리에 앞서 말과 넋과 삶이 살갑고 튼튼하며 고운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바람드리의 라무》를 써낸 분께서는 이 대목을 조금 더 깊이 살피고 널리 감싸안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2.12.29.불.ㅎㄲㅅㄱ)


 ┌ 《바람드리의 라무》(바람의아이들,2009)
 ├ 글쓴이 : 류은
 └ 책값 : 8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