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빨래와 책읽기


 나흘 앞서부터 오른어깨가 전기라도 먹은듯 결리더니, 그제부터는 오른손목까지 결립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결릴까 궁금하지만, 지난날 자전거 타고 한창 다닐 때 뺑소니 차에 치여 오른어깨며 오른손목이며 오른팔꿈치며 망가지다시피 다친 적이 있어서, 이렇게 때 되면 아프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리하여, 날마다 수북히 쌓이는 아기 천기저귀 빨래를 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옆지기가 아이를 낳은 지 일흔 날쯤 되는 만큼 몸은 어느덧 나아져서 혼자서 하루치 기저귀 빨래를 해내기도 하지만, 아무리 하루치 기저귀 빨래를 혼자서 해낸다고 하여도 옹글게 나아진 몸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루 힘을 빼면 이튿날은 곁에서 보기에 안쓰럽도록 몸이 축났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아기를 어르고 달랠 때에도 고단해 보입니다. 멍해지지요. 서로서로 힘들고 지치는데, 큰식구가 아닌 작은식구로 아이를 돌보자니 힘들고 지칠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집식구는 큰식구가 아닌 작은식구들뿐입니다. 작은식구가 되어 아이를 낳으니, 집식구 가운데 하나는 바깥에 돈 벌러 나가야 하고, 한 사람이 남아서 오로지 혼자 애를 보아야 하는데, 지치디지쳐서 어디 시설에라도 맡기고 싶어지고, 돈을 주고라도 사람을 써서 돌보게 하고 싶겠구나 싶습니다. 아이 키우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 작은식구가 아니랴 싶습니다.




 나흘 앞서는 어깨 결림을 느끼면서 왼손 빨래로 조금 하다가 거의 오른손 빨래로 했는데, 오른손목이 결리는 그제부터는 거의 왼손 빨래를 하다가 살짝 오른손 빨래를 합니다. 처음 왼손 빨래를 해 본 때는, 신문배달을 하다가 오른손가락이 다쳐서인데, 99년이었던가, 신문배달을 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뒤에서 자전거를 들이받은 뺑소니 사고로 오른손목이 맛이 갔습니다. 그때는 죽지 않고 오른손목만 망가져서 한숨을 돌렸다고 할 텐데, 이제 와서 그때 그 아픔을 떠올려보았자 다친 오른손목이 나아질 일이란 없고, 다만, 그때 그렇게 다치면서 한 달 남짓 오른손 빨래를 할 수 없었습니다. 밥숟가락 들기도 어려웠는걸요. 그래, 처음 오른손가락이 다칠 때 조금씩 왼손 수저질을 익히고 왼글씨 쓰기를 해 보다가 그때 한 달 남짓 끙끙대며 왼손 빨래를 하고 왼손 젓가락질을 부지런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른손목이 많이 나아진 뒤로는 오른손으로만 하는 일을 크게 줄이고, 왼손으로 일손을 나누었어요. 셈틀을 쓸 때 다람쥐를 왼쪽에 놓고 씁니다. 오른쪽에 몰려 있는 숫자 글쇠를 안 쓰고 자판 위쪽에 한 줄로 있는 숫자 글쇠를 씁니다. 이 모두 오른손 짐을 덜고 왼오른손이 고르게 쓰이도록 하는 일입니다.

 엊저녁 열 시쯤 잠이 들었습니다. 세 식구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힘들기도 했고, 옆지기가 많이 멍하다고 해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저도 일감이 잔뜩 밀려 있고 빨래감도 우리를 기다리지만 다 미루고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찍 자니 아기도 잘 자 주어 고맙기도 했지만, 저는 새벽 한 시부터 잠에서 깨었습니다. 새벽에 깨어 아기 기저귀를 갈고 나서 ‘오늘은 이제부터 일어나서 일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아니야, 그래도 한 시간은 더 자야지’ 하고 도로 누워서 두 시에 다시 깼다가 네 시에 벌떡 일어납니다.

 네 시 반쯤, 옆지기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더 자도 될 텐데, 일찍 잔 까닭에 일찍 일어나서 말똥말똥해지는구나 싶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집에서는 온 식구가 일찍 자고 아빠 엄마가 새벽녘에 일어나 밀린 일손을 조용히 하면 훨씬 수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가 깨어 같이 놀아 달라는 낮에는 집안일이고 뭐고 붙잡기 어렵거든요. 차라리 온 식구가 일찍 자자고 하면 아기도 잡니다. 그러나 일이 많아서 늦어진다고 늦게까지 안 자면 아기도 안 자요. 그런데 용하게도 아기는 새벽에는 안 일어나 줍니다. 아침까지 내처 잡니다. 이리 고마울 데가 없는데, 어쩌면, 아기가 우리 두 사람을 헤아려 주는지 모릅니다.

 밀린 일을 어느 만큼 마무리하고 나서, 씻는방으로 가서 빨래를 합니다. 기저귀 일곱 장과 배냇저고리 한 장과 수건 한 장. 아기 똥오줌이 묻은 옆지기 옷과 속싸개가 있는데, 남은 빨래는 아침에 해 뜨면 하려고 남겨 둡니다. 오늘은 모든 빨래를 왼손 빨래로만 합니다. 햇수를 따지면 벌써 열 해가 되는 왼손 빨래인데, 아직 오른손 빨래만큼 비빔질이 잘되지는 않습니다. 오른손이 다치거나 아플 때마다 하기는 했던 왼손 빨래고, 오른손 빨래를 하는 틈틈이 왼손 빨래를 하기는 했지만, 제가 오른손잡이라 잘 안 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아픈 오른팔을 더 쓰기 어려우니 왼손으로만 북북 빠는데, 조금씩 비빔질 힘이 잘 들어간다는 느낌입니다. 문득, 지난달께 우리 도서관에 취재를 왔던 어느 촬영기사가 묻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래를 잘하세요?”

 혼자서 살림 다하고 살면 저절로 하게 되는 빨래인데. 세탁기를 비롯한 기계문명을 아예 안 쓰거나 되도록 덜 쓰려고 하면 마땅히 하게 되는 손빨래인데. 내가 남자라 그렇지, 내가 여자였다면 그렇게 물어 보지 않았을 텐데. 여자가 아닌 남자라 해도 집살림을 알뜰살뜰 할 수 있도록 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할 텐데.

 비빔질을 하면서 문득, 세상사람이 ‘한 사람 삶’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외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또다른 생각이 이어집니다. 고등학교 때인데, 반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동무들한테 묻던 말. “야, 넌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 전교에서 1등을 홀로 차지하는 동무녀석은 이 물음을 꽤 자주 들었는데, 그 아이 지능지수는 저보다 한참 낮았고 반에서 그럭저럭 공부하는 동무들하고 엇비슷했지만, 시험성적은 꼭 높았습니다. 동무녀석은 늘 수줍게 웃으면서, “야, 내가 머리 안 좋은 건 너희들도 알잖아. 그냥 부지런히 하면 돼.”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 동무녀석을 가만히 보면, 참 부지런히 공부에 파고들었고, 한번 파고들면 옆에서 떠들어도 떠드는 소리를 못 듣고 교과서나 참고서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타고나기를 마음모으기 잘하는 매무새였는지 모르나, 그런 타고남이 어느 만큼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보다는 그 동무녀석 스스로 자기한테 무엇이 모자라는 줄 또렷이 깨달으면서 자기가 바라는 길로 나아가고자 날마다 무던히 힘쓴 보람이 그런 시험성적으로 빛을 보지 않았으랴 싶어요.





 오늘 새벽, 왼손 빨래를 하면서 동무녀석을 떠올리고, 또 사람들이 저한테 뻔질나게 물어 보는, “어떻게 헌책방에서 그런 드문 책을 잘 찾아내셔요?” 하는 말, “어떻게 좋은 책을 찾아내어 읽어요?” 하는 말을 곱씹습니다. 옛적 동무녀석이 다른 동무들한테 하던 말처럼, “부지런히 헌책방을 다니면 책이 저절로 보여요.”, “좋다 나쁘다 가리지 말고 이 책 저 책 골고루 부지런히 오래오래 읽다 보면 저절로 느껴요.” 하는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한 왼손 빨래가 아니라, 한 해 두 해 한다고 잘할 수 있는 왼손 빨래가 아니라,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씩 해야 비로소 익숙해지는 왼손 빨래이며(왼손잡이한테는 오론손 빨래), 막다른 골목까지 밀리고 또 밀리면서 끝까지 견디고 이겨내면서 치러내어 몸에 배도록 하는 왼손 빨래입니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스승들한테 배우기도 하지만, 있는 돈 없는 돈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모두 바치고 바쳐 열 해고 스무 해고 들이면서 스스로 눈을 뜨게 되는 책읽기입니다. 가난뱅이라서 못 찍는 사진이 아니라, 가난뱅이임에도 죽어라 알바 뛰고 뭐 뛰고 해서 필름값 벌고 사진기값 모아 애써 한 장 두 장 찍는 가운데 몸뚱이로 배우는 사진찍기입니다.

 추천도서목록에 적힌 책을 줄줄줄 찾아서 읽는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나 거룩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습니다. 멋진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좋다는 책 몇 권 읽었다 하여도 괜찮은 사람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름난 사람이 알려주는 책이라든지, 훌륭한 분이 건네주는 책이라든지, 아름다운 이가 선물해 주는 책 몇 가지를 읽는다고 하여 우리 삶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면서 우리 넋과 얼이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피를 흘리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피를 바치고 살을 들여야 합니다. 내 팔을 잘라서 바치듯, 내 다리를 베어서 드리듯, 온몸과 온마음을 쏟지 않고서야 ‘책 읽는 매무새’를, ‘책 알아내는 눈길’을, ‘책 보듬는 마음결’을, ‘책 꿰뚫는 가슴’을, ‘책 쥐어드는 손길’을, ‘책 짊어지는 등판’을 갈고닦을 수 없습니다. (4341.10.24.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