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를 느긋하게 달리는 사람은 책도 느긋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빠르게만 내달리는 사람은 책을 손에 쥘 틈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알맞는 때에 알뜰하게 모는 사람은 책을 손에 쥐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그저 자기가 맨앞에서 싱싱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책하고는 담을 쌓으며 삽니다.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더 빨리 가야만 하기에 타는 자동차가 아니요 자전거가 아닙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흐느적흐느적 걸어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운동 삼아서 자전거를 타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느끼고 싶기에 걷습니다. 세상을 껴안고 싶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땅기운을 느끼고 싶기에 걷습니다. 우리 사는 둘레를 고이 보듬고 싶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겨울꽃을 보고 봄꽃을 기다리고 있기에 걷습니다. 겨울눈과 겨울바람, 봄비와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좋기에 걷습니다. 따순 햇볕에 얼굴이며 팔뚝이며 허벅지며 새까맣게 타는 맛이 좋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어깨와 다리와 팔과 허리가 내 몸뚱이로구나 느끼기에 걷습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처음에는 주르륵 흐르다가 그예 방울로 맺히며 똑똑 떨어지는 짭쪼름한 맛이 좋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저는 요즈음 자전거를 통 못 타고 있습니다. 왼어깨와 오른팔꿈치가 꽤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힘겹습니다. 오른손목이 저리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뺑소니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1998년 9월,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때, 새벽일을 마치고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까맣고 큰 차가 뒤에서 제 짐자전거를 쳤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하늘을 날았고 몇 초쯤 뒤 길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때 ‘아, 머리는 깨지면 안 돼’ 하고 생각하며 오른팔로 머리를 감싸서 머리는 안 깨지고 오른손목이 나갔습니다. 2004년 여름, 내리막길에서 짐차 한 대가 제 앞에 확 끼어들었습니다. 차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서둘러 멈추었다가 차와는 가까스로 안 부딪히고 길바닥에 어깨가 질질질 갈렸습니다. 여섯 달 뒤 비슷하게 들이미는 차 때문에 다시금 뒹굴며 오른팔꿈치가 나갔습니다.
한동안 그럭저럭 참으며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어깨를 쓰고 팔을 쓰고 손을 쓸 때마다 뜨끔뜨끔 아픔이. 책만 볼 때는 몰랐던 세상 마음씀이 몸뚱아리 깊숙히 배어듭니다. 자전거로 달리며 바라보고 느낀 삶터와 사람 매무새는 책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쉬게 되니 전철이나 버스를 탑니다. 어디 오갈 때 책읽는 시간이 늡니다. 그렇지만 답답합니다. 훌륭한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먹으니 즐거웁지만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달별을 못 부대끼니 서운하면서 쓸쓸합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타던 자전거 두 대를 아는 분한테 빌려드렸습니다. 내 몸이 다 낫는 날을 맞이하면 돌려받기로 하고. (4341.2.6.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