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놓고 미처 못 읽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 사 놓지도 못해서 못 넘겨보는 책이 있습니다. 나온 줄도 몰라서 사 놓을 생각조차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 제 곁에 있으면서도 제 손길을 제대로 타지 못하는 책들은, 한편으로는 쓸쓸하지만 언젠가 저 아닌 다른 누군가한테 손길을 탈 수 있는 책입니다. 적어도 제가 잘 간수해 놓고 있으면 이 책은 제 살림집에서 고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아직 사 놓지 못한 책들은 누군가 사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들이지 않으면서 헌책방 책시렁, 또는 새책방 책꽂이에서 조용히 사라질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재고정리 하듯 찢어버릴 수 있습니다. 나와 있을 텐데 아직 나와 있는 줄 모르는 책 또한 누군가 알아보고 사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어 눈물만 흘리고 기다리다가 고요히 잠들어 버릴 수 있어요.

 모든 책을 다 사서 읽을 수 없습니다. 모든 책을 고루 장만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 힘이 닿는 데까지는, 제 눈길이 끌리는 데까지는, 제 손길이 미치는 데까지는, 제 곁에 책을 마련해 놓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을 하나하나 넘겨보게 되든, 짬도 없고 틈도 없어서 미처 들춰보지 못하게 되든. (4341.4.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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