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2 아무것도 아닌
책벌레수다 : 아이한테서 배우는 길
혼자 책벌레로 노닐던 사람은 2008해에 큰아이를 낳는다. 아기가 태어나는 보금자리로 바꾸려고 여태껏 살던 얼개를 모두 버린다. 새로 이곳에 오는 아기는 새길을 바라보고 맞이하며 놀고 노래할 노릇이다. 책으로만 그득그득 채울 뿐 아니라 손에도 따로 질끈 동여맨 책더미를 쥐던 사람은 이제 ‘아기살림’을 짊어지고 손에 안는다. 이러면서 아기를 안는다. 아기수레를 쓸 마음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그동안 두바퀴로 온나라를 달리면서 느낀 바가 있다. 이 나라는 두바퀴를 굴리다가 으레 자빠지거나 구멍에 빠지거나 미끄러지거나 턱에 걸리는 길바닥이다. 아기수레를 끌다가는 아기가 너무 힘들 테지. 길바닥이 고르지 않으니, 아기수레에 앉는 아기는 둘레를 덜덜 떨면서 봐야 하고, 눈을 버리기 쉽다.
‘와, 반 아이들이 전멸. 어쩌다가? 앗! 선생님까지 잠들었어.’ 《옆자리 세키군 1》 153쪽
1998해부터 혼자서 그림책을 눈여겨보았고, 1999해에 들어간 펴냄터 ‘보리’에서 나라안팎 그림책을 실컷 보았으며, ‘보리·도토리’ 펴냄터 책칸에 없는 나라안팎 그림책을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챙겨 주는 나날을 보냈다. 2001∼2003해에는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모음빛(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일하면서 더더욱 신나게 혼배움으로 온갖 그림책을 읽고 살피고 느낌글을 썼다. 2003∼2007해에는 이오덕 님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면서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더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돌아보는 나날을 살았다. 아직 아기를 안 낳은 젊은사내 가운데 혼자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사읽고 챙기면서 익힌 이는 드물다. 이 나라에 ‘동화읽는 엄마’ 모임은 있되 ‘동화읽는 아빠’ 모임은 없을 뿐 아니라, ‘그림책 읽는 젊은이’ 모임마저 아직 없다고 느낀다. 이리하여 2008해에 큰아이가 태어났을 적에 “아이한테 그림책 읽히기”는 그냥그냥 늘 하던 일이라서 수월했고, 외려 아이한테서 그림책과 책읽기를 새롭게 배우는 하루였다.
‘세키가 하는 일에 괜히 신경 쓰지 말자. 즐거운 점심시간이 다 날아가잖아. 《옆자리 세키군 2》 25쪽
어릴적에도 신은 혼자 손빨래를 했고, 집일을 거들며 걸레빨기를 언제나 했다. 1995해부터 혼살림을 지으며 늘 손빨래를 했기에, 2008해에 낳은 큰아이를 돌보면서 기저귀빨래가 하나도 안 힘들었다. 기저귀를 비롯해 배냇저고리에 이불에 포대기에 처네를 날마다 끝없이 빨고 말리고 다리고 개는데, 늘 노래를 부르고 아기를 안으면서 흥얼흥얼 했다. 앉으나 서나 누우나 걸으나 아기랑 함께 보내는 나날이란,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밝히면서 엄마아빠 두 사람을 새롭게 가르치고 일깨워서 ‘사람’으로 가꾸는 길이라고 느꼈다. 그러니까 제 몸으로 아기를 낳든, 이웃에서 태어난 아기를 보살피고 헤아리든, 우리가 사람으로 살림하며 살아가려면 온누리 모든 아기와 아이를 푸근하게 품을 줄 아는 품새로 거듭날 일이다. 집과 마을과 나라는 언제나 아기와 아이한테 맞출 노릇이라고 새삼스레 배웠다. 우리가 나누는 말과 글도 언제나 어린이 눈높이로 헤아려서 가다듬을 일이라고 다시금 익혔다.
처음 학원을 등록하고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일주일에 두 번씩 홍대에 가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것도 피곤한 홍대에 그렇게나 자주 갈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벌써 지쳤다.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163쪽
글을 굳이 쉽게 써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 분이 꽤 있는 줄 안다. 그분들은 아기를 안 낳거나 이웃 아기를 보살핀 바가 없다고 느낀다. 몸소 낳든 온누리 아이를 살피든, 한집에서 어린이와 함께 지낼 적에 ‘아무 말글’이나 쓰면 안 되는 줄 배운 바가 없기에 ‘쉬운말(쉽게쓰기)’이라는 길을 못 배우고 못 보고 놓치는구나 싶다. 이를테면 나라일터(청와대·국회의사당·도청·시청·군청)가 어린배움터나 어린이집 귀퉁이에 있다면, 늘 어린이를 마주할 테니 얼뜬짓이나 멍청짓이나 더럼짓이나 뒷짓을 아예 못 한다. 모든 나라일터가 어린배움터나 어린이집하고 너무 먼 곳에 있다 보니, 숱한 벼슬아치는 그만 얄궂게 뒷짓을 하고야 만다. 왜 서울과 부산 같은 큰고장마저 어린배움터가 닫고야 말까? 이름은 ‘어른’이되 정작 어른이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 줄 안 보고 안 배우는 탓이다. 어린배움터와 어린이집을 늘 곁에서 지켜볼 뿐 아니라, 보금자리에서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 살아낼 적에는, 어떤 곳도 아기가 안 태어나서 ‘사라질(인구소멸)’ 까닭이 없다. 마을 한복판에 어린배움터와 어린이집과 놀이터와 빈터가 있어야 한다. 나라 한복판에 어린이가 실컷 뛰놀 쉼터와 들숲메가 있어야 한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오롯이 나무길과 들길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음껏 맨발로 마을과 마을 사이를 넘나들면서 만나고 놀고 노래하는 터전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온나라 젊은이는 즐겁고 느긋하고 아늑하게 아기를 낳아서 새록새록 돌보는 길을 열 수 있다.
나의 갱년기 서사를 기록하는 동안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내가 쓰는 언어가 합당한가? 나도 모르는 부정적인 함의가 들어 있는 말을 쓰고 있진 않은가? 《웰컴 투 갱년기》 175쪽
어른은 무턱대고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는 마냥 배우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이름일 적에는 아이한테서 어질게 배워서 슬기롭게 돌려준다는 뜻이다. 아이라는 이름일 적에는 어른을 가르치고 일깨우면서 스스로 익히고 가다듬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른·아이’라는 두 낱말이 어떤 속뜻과 밑뜻과 참뜻인지 하나도 모른다. 아니, 지난날에 손수짓기를 하던 시골살림이던 때에는 누구나 익히 알았으나, 오늘날에 서울살이를 하느라 몽땅 잊고 까맣게 놓친다. 아이는 어른을 지켜보고 가르치면서 스스로 철든다. 어른은 아이 곁에서 보금자리를 돌보고 살림을 지으면서 차분히 철든다. 어른아이는 다르게 무르익는데, 어른한테는 늘 아이빛이 흐르고, 아이한테는 노상 어른빛이 스며든다. 누구나 아이요 어른일 뿐 아니라, 어른이며 아이인 줄 알아챈다면, 나이로 근심걱정을 안 한다. ‘나이’라는 낱말이 워낙 ‘낳이’였다가 요샛말(표준어)로는 ‘나이’로 다듬어서 쓰는 줄 잊어버리니, 새롭게 살림을 낳을 줄 아는 슬기를 익히는 해(한 해)를 머금어 한 살씩 얻기에 ‘낳이(나이)’인 줄 모르고 만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SF의 서사 기법과 스펙터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이미 천 번도 더 본 신파적 이야기를 포장하는 데 이용한다. 《필수는 곤란해》 59쪽
책벌레는 책을 읽는다. 책과 책 사이를 잇듯 책을 읽는다. 책벌레는 모든 책을 읽으려고 한다. 책벌레는 책을 못 가린다. 아니, 안 가린다. 이 책은 이 책대로 읽으면서 배우고, 저 책은 저 책대로 읽으면서 배운다. 온누리 모든 어린이를 사랑으로 마주하고픈 어른으로 살아갈 마음인 책벌레이니, 모든 숨결을 푸르게 맞이하듯 모든 책을 새롭게 품는다.
ㅍㄴㄹ
《옆자리 세키군 1》(모리시게 타쿠마/정은서 옮김, AK COMICS, 2011.9.25.)
《옆자리 세키군 2》(모리시게 타쿠마/정은서 옮김, AK COMICS, 2012.3.25.)
#となりの?くん #森繁拓?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하현, 빌리버튼, 2019.2.25.)
《웰컴 투 갱년기》(이화정, 오도카니, 2025.2.10.)
《필수는 곤란해》(피어스 콘란/김민영 옮김, 마음산책, 2023.12.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