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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네 이야기 11
유키 스에나가 지음, 모에 타카마사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25년 7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2.12.
나는 내 말씨부터
《아카네 이야기 11》
스에나가 유키 글
모우에 타카마사 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7.25.
우리나라 글살림을 엄청나게 갈아엎는 첫길을 연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이 1989년에 태어났습니다. 이 책을 쓴 이오덕 님은 사슬나라(일제강점기)이던 무렵부터 차꼬나라(군사독재정권)이던 내내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를 돌보면서 어린이 스스로 살림짓기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가꾸는 나날을 살아냈습니다. 이러다가 전두환 막바지에 어린배움터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전교조 교사’가 아니었어도 쫓겨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입니다.
멧골마을 작은배움터에서 더는 어린이를 못 돌보고 못 지키고 못 가르치는 날벼락 탓에 몹시 슬프고 아프셨다는데, 이듬해에 어느 큰배움터(대학교)에서 이오덕 님더러 “이제는 젊은이한테도 글살림을 가르치는 길잡이가 되실 만하지 않나요?” 하고 여쭈며 찾아왔다지요. 어린길잡이(초등교사)만 하던 사람이 어찌 젊은이를 가르치느냐며 손사래를 치다가 받아들이기로 하고서, 이태 동안 스물 안팎 나이인 젊은이를 가르치고서 그만두기로 했답니다. 더 가르칠 수 있지만, “어느 대학교 한 곳을 다니는 젊은이만 이끌기보다는, 온나라 모든 젊은이한테 ‘글길잡이’ 노릇을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또한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젊은이, 그러니까 푸른배움터만 마친 채 일하는 모든 젊은이”한테도 글길잡이가 있을 노릇이면서, “이미 어른이 된 서른 살과 마흔 살과 쉰 살과 예순 살 모두”한테도 새롭게 글길잡이가 있어야 할 노릇이라고 느꼈다지요.
우리는 흔히 잘못 짚거나 엉뚱하게 새기곤 합니다. ‘길잡이(교사·지도자)’는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길잡이란, 그저 먼저 어느 길을 나아간 사람입니다. 가시밭길이건 꽃길이건 스스럼없이 누구보다 먼저 걸어가면서 느끼고 겪고 배운 바를 고스란히 둘레에 알리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어린배움터이든 푸른배움터이든 큰배움터이든 매한가지입니다. ‘길잡이’는 훌륭한 어른일 까닭이 없습니다. 모름지기 모든 길잡이는 ‘어린이랑 함께 배우려는 사람’이면 됩니다. 마을길잡이도, 배움길잡이도, 나라길잡이도, 집안길잡이도, 글길잡이도 똑같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세워서 ‘똑같이 따라하’지는 말아야 하고, 어느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할 까닭이 없으며, 어느 우두머리 마음이나 입맛에 들려고 아양을 떨지 않아야겠지요.
“가르치는 사람”이란 “배울 줄 알며, 기꺼이 배우고, 즐겁게 배운 다음 익혀서 다시금 들려주고 알려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르치는 길을 배우는 사람이 바로 ‘길잡이’입니다.
“배우는 사람”이란 “가르칠 줄 알며, 신나게 가르치고, 기쁘게 가르치는 동안 가만히 사랑이 피어나서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배우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 ‘배움이(학생)’입니다.
두 길과 두 사이와 두 사람과 두 자리를 헤아려 본다면 《우리글 바로쓰기》란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야 할 길잡이’일 수 없습니다.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은 ‘멧골자락 작은배움터 길잡이’로 내내 살아오고 일하다가 ‘서울 젊은이를 만나서 배운 바’를 글어른 나름대로 익히고 가다듬어서 풀어놓은 작은씨앗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아카네 이야기》는 퍽 아름답게 줄거리를 여미어 들려주는 그림꽃입니다. 첫걸음부터 열걸음을 지나는 동안 이러한 물줄기가 고스란합니다. ‘아카네’라는 아이는 어린배움터를 다니기 앞서부터 ‘아버지가 펴는 소리마당’을 지켜보면서 따라했고, 어린배움터를 다닐 적에는 ‘나 나름대로 배우는 소리마당’으로 건너갔고, 푸른배움터를 마치며 젊은이로 피어나는 동안에는 ‘나와 너(이웃)를 아우르는 하늘빛(우리)으로 날개돋이하는 소리마당’을 바라봅니다.
모든 사람이 길잡이로 살아갑니다. 스승 하나만 길잡이일 수 없습니다. 함께 배우는 동무도 길잡이로 만납니다. 또한, 나 스스로 너한테 길잡이요, 나는 스승한테까지 길잡이입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길잡이요 스승이고 동무에 이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사람인 줄 알아챈다면, 사람인 스승한테서도 배우고, 엄마아빠한테서도 배우고, 동생과 언니한테서도 배우고, 낯선 이웃한테서도 배웁니다. 게다가 사납거나 모질거나 매몰차거나 차갑거나 고약한 짓을 일삼는 모두한테서도 배워요.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삶과 살림을 착하게 일구는 빛”을 배웁니다. 나쁘거나 얄궂다고 하는 굴레에 빠진 사람한테서는 “삶과 살림을 스스로 망가뜨릴 적에 어떻게 망가지는가 하는 늪”을 배웁니다. 먹을 적에는 먹는 살림을 배우고, 내놓을 적에는 내놓는 살림을 배워요. 이쪽도 살림길이고 저쪽도 살림길이에요. 그래서 이 푸른별에는 ‘밤낮’이 있고, 우리는 낮이 아닌 밤을 먼저 짚고 이야기합니다.
밤이란, 몸에서 모든 힘을 빼고서 가만히 누이고 곧게 편 뒤에, 오롯이 마음에 담는 빛줄기로 넋을 깨워서 꿈을 그리는 때입니다. 그래서 밤에 별을 마주하고 품습니다. 그렇기에 밤에 돋는 별이 ‘밝다’고 합니다. 밤이란, 밝은 때요, 밝은 빛으로 어둠을 다스려서 모든 어렵고 힘들던 실타래를 푸는 길입니다.
낮이란, 밤새 되찾은 기운을 바탕으로 새벽(새롭게 트는 빛)을 맞이하고서, 새벽이슬 한 톨을 받아들이는 하루를 살아내는 때입니다. 낮에 뜨는 해는 모든 나(숨결)가 나무처럼 서면서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며 일하고 노는 길입니다. 밤새 어둡던 길을 밝히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이기에, 아침은 ‘환하다’고 합니다. 환한 낮이기에 활짝 날개를 펴지요. 활개를 치듯 일하고 놀이합니다.
《아카네 이야기》를 이루는 이야기는 꼭 《우리글 바로쓰기》를 아우르는 이야기하고 닮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이 여태 ‘우리글’이 아닌 ‘중국글’에 ‘일본글’에 ‘미국글’로 휩쓸리면서 제넋도 제가락도 제길도 잊다가 잃었다는 줄거리마냥, 높다란 스승만 좇다가는 어떤 소리마당도 ‘나답게’ 펴거나 일굴 수 없다는 줄거리입니다.
말을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말을 못 해야 하지도 않습니다. 글을 잘 쓰거나 못 써야 하지도 않아요. 오직 “말을 하면” 되고, “글을 쓰면” 됩니다. 마음을 담은 소리인 말이니, 내 마음과 네 마음이 만나서 우리 마음으로 피어나는 길을 읽고 이으면 누구나 이곳에 빛나는 이름으로 있게 마련입니다. ‘잘’울 따지느라 그만 ‘잘못’이 뒤따르지요.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울면, 어느새 “잘 하는 말”하고 “못 하는 말”을 ‘좋다·나쁘다’로 가르느라 싸웁니다. 싸우니 겨루고 다툽니다. 싸워서 겨루고 다투니 값(순위·등급·계급·질서)을 매깁니다. 값을 매기느라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생기고, 잘난책은 자랑책으로 뻗다가 시나브로 자빠지고 말아요.
말은 그저 할 노릇입니다. 모든 하루를 그저 삶이라는 길로 느끼고 받아들여서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을 노릇입니다. 나무를 이루는 바탕은 뿌리가 아닌 ‘그루’입니다. 나무는 그루가 있기에 하늘을 보며 줄기를 올리고, 땅을 품으며 뿌리를 뻗습니다. 그루에서 고르고 곧게 나아가는 줄기와 뿌리요, 이러한 결을 가지로 이어서, 가지에 잎을 내고 꽃을 피워서 씨앗과 열매를 베풀어요. 사람도 나무와 매한가지인 터라, 사람을 이루는 몸마음이라는 ‘그릇’이 ‘그루’와 나란한 살림길을 여미면 넉넉합니다.
땅을 호면서 홈을 내는 연장이라서 ‘호미’입니다. 바느질에도 있는 ‘호치다’입니다. 홈이란 하나로 이루는 골이자 길입니다. 하나로 이루는 골이자 길처럼 스스로 배우고 나아가니 ‘홀·혼·홑’입니다. 누구나 홀로 나아가고 혼자 일구며 홑으로 깨어납니다. 하나인 ‘홀·혼·홑’이기에, 나처럼 너도 하나인 ‘홀·혼·홑’을 맞아들여서 ‘나하고 너를 아우르는’ 바람과 바다처럼 ‘우리’를 열어서 웃고 우는 오늘을 이룹니다.
웃은 하루라면 웃은 삶을 그대로 말하고 글쓰면 됩니다. 울어버린 하루라면 울고 만 삶을 낱낱이 말하고 글쓰면 됩니다. 웃기에 기쁘지 않고, 울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가두기에 갑갑하다가 슬프고, 나누기에 싹트면서 기쁩니다. 모든 말은 마음으로 이루고, 모든 마음은 삶으로 일구고, 모든 삶은 꿈으로 짓고, 모든 꿈은 한밤에 심는 생각씨앗 한 톨로 폅니다. 좋은말과 나쁜말이라는 사슬(감옥)을 가르지 않을 줄 알면, 누구나 말지기에 글지기로 섭니다. 좋은글과 나쁜글이라는 굴레(독재)를 가두지 않을 수 있으면, 누구나 살림말과 살림글을 즐기며 나눕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글을 써야 할는지 망설일 까닭이 없습니다. 다 핑계입니다. 그저 나를 말하고 너를 들으면서 우리를 나누면 파랗게 일렁이는 바람 한 줄기가 찾아듭니다. 그대로 나를 나타내고 고스란히 너를 바라보면 우리를 살리면서 파랗게 넘실대는 바다빛을 빗물 한 방울과 샘물 한 모금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말씨를 사랑합니다. 너는 네 말씨를 사랑하지요. “내 말씨”랑 “네 말씨”는 바로 ‘사투리’입니다. ‘서울말(표준말·교양 있는 언어)’이 아니라, 서로서로 사투리(내 말 + 네 말 + 우리말)를 즐겁게 쓰면 저절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저절로 어깨동무를 하니,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글은 노래요 춤이면서 별빛 한 자락입니다.
ㅍㄹㄴ
“시끄러. 내게 네게 부탁하고 싶은 거다. 그것뿐이야.” (22쪽)
“라쿠고를 할라치면 딱 성실해져.” “성실하면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지만, 아직 멀었어. 더 할 수 있잖아? 넌 자기 실력의 반도 못 보여주고 있다고.” (59쪽)
“당연히 하는 거지. 에도 사투리 없이 ‘너구리 주사위’를 하라고.” (71쪽)
“물론 속은 상하지. 하지만 울분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어. 불행하지도 않았고.” (135쪽)
‘이제 기초만이 아니어도 좋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놀면 되는 거다.’ (182쪽)
#あかね噺
《아카네 이야기 11》(스에나가 유키·모우에 타카마사/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
관객 4명으로 시작한 이 회가, 4회째에 벌써 만원 사례잖냐
→ 손님 넷으로 연 이 모임이, 넉걸음에 벌써 구름떼잖냐
→ 구경꾼 넷을 연 이 모임이, 넉벌째에 벌써 붐비잖냐
8쪽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베팅한다
→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건다
→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민다
41쪽
제 18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 제 자랑이 될 수 있다고?
→ 제 꽃노래가 될 수 있다고?
54쪽
실패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기예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모 아니면 도, 한판 승부
→ 넘어지면 이제까지 쌓아온 길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돌개바람. 모 아니면 도, 한판겨룸
→ 쓰러지면 여태까지 쌓아온 재주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큰바람. 모 아니면 도, 한판싸움
68쪽
“알고 계셨군요.” “스승님한테 들었어.”
→ “아셨군요.” “스승님한테서 들었어.”
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