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서구적인 얼굴



  흔히 “서구적인 외모”라는 말을 ‘잘생겼다’는 뜻으로 쓴다. 그러나 “서구적인 외모”만 잘생기고, “아프리카적 외모”라든지 “남미적 외모”라든지 “중국·일본적 외모”라든지 “말레이시아적·동남아시아적 외모”는 못생겼다는 뜻일까? 아무래도 “서구적인 외모”가 아니면, 이른바 “한국적인 외모”조차 ‘못생겼다’는 뜻으로 빗댄다고 느낀다.


  번듯하거나 말끔한 얼굴이나 몸매라면 ‘잘생겼다’고 할 수 있다. 안 번듯하거나 안 말끔한 얼굴이나 몸매라서 ‘못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밝히는 말이나 글은 안 대수롭다. 그렇지만 ‘서구적·한국적’ 같은 일본말씨를 붙이는 마음이나 자리를 살피면, “넌 왜 이렇게 부럽게 잘생겼어?” 하고 시샘을 한다든지, “나 따위는 너무 못생겨서 싫어!” 하고 스스로 갉거나 깎는 빛이 어린다.


  닷새쯤 앞서 부산으로 일을 다녀오는 길에도 “조상 중에 서양에서 오신 분 계시지 않아요? 틀림없이 서양 분이 있어서 서구적인 외모인데요?” 하는 말을 다시금 듣는다. 이 말을 여태 골(10000)이 웃돌 만큼 들었다. 골머리가 아플 만한 골질 같은 말인데, 여러모로 곱씹으면 “넌 튀기(혼혈) 아냐? 그나마 넌 나은(잘생긴) 튀기이네? 잘생겼으니 봐주지?” 하는 속내를 품는다. “넌 우리(한국인)처럼 생긴 얼굴이 아니니까 우리 사이에 끼어줄 수 없어. 그래도 뭐, 보기나쁘지 않으니 봐주지.” 하면서 담을 치는 속마음마저 있다.


  남을 얼굴부터 훑으면서 ‘얼굴말(외모비평)’을 일삼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나는 이미 스무 살부터 “텔레비전 안 들이는 곳”에서 살려는 뜻으로 어버이집을 박차고 나왔다. 어려서부터 거울을 안 보려고 했고, 혼살이를 하던 무렵부터 “집에 텔레비전도 거울도 안 놓는 삶”을 잇는다. 바라보려면 마음을 볼 노릇이다. 얼굴을 안 쳐다봐야 할 까닭은 없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이라면 ‘마음읽기 + 말나누기(이야기) + 생각짓기(미래설계)’라는 세 가지를 살필 노릇이라고 본다.


  텔레비전을 집에서 치우고서 거울을 안 들여다보니, 참말로 이웃이나 동무를 만날 적에 얼굴을 거의·아예 안 본다. 요사이는 “얼굴을 마주보지 않으며 말하면 버릇없다”고 여기는 분이 많아서, 말을 할 적에 이따금 얼굴을 마주보기는 하지만, 나는 되도록 “얼굴 안 보며 말하기”를 한다. 아니 “겉으로 보이는 얼굴이 아닌, 눈망울을 거쳐서 들여다보는 마음”을 마주하면서 말을 한다. 이런 터라, 자주 만나거나 뜸하게 만나거나 “그분 얼굴이나 생김새”를 하나도 못 떠올려서 못 알아보기 일쑤이다.


  서로 눈망울을 바라보며 말을 나눌 적에는 허튼말이나 속임말이나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다. 추킴말이나 겉치레말도 아예 안 한다. 부질없는 말치레에 이 하루를 빼앗길 까닭이 없다. 오롯이 눈망울을 마주보면서 말을 나눌 적에는 서로서로 ‘마음읽기 + 말나누기(이야기) + 생각짓기(미래설계)’를 저절로 이룬다. 이 얼거리는 책읽기에서도 똑같다. 우리는 ‘책읽기’라는 길에서 “글쓴이 이름값·펴냄터 이름값·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나 추천도서라는 이름값 따위는 몽땅 걷어낸 채”, 책이라는 꾸러미에 깃든 “이야기라는 숨결”만 말갛게 바라볼 노릇이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눈망울을 보는 하루를 지으면, 읽는이(독자)와 지은이(작자) 사이에 그저 마음과 마음이 별빛으로 마주치면서 반짝반짝 빛난다. 다만 우리나라 책마을을 돌아보면, 한참 멀다. 아직 우리는 ‘이야기’가 아닌 ‘이름값’을 쳐다본다. 숱한 지은이(작자·작가)는 옷차림이나 얼굴이나 몸매를 꾸미려고 온힘과 목돈을 쏟아붓는다. 우리가 어른이면서 지은이라면, ‘프로필 사진’ 따위는 안 찍어야 맞다. ‘멋지게 찍는 프로필’이 아닌, 아줌마이면 아줌마 모습으로 찍고, 할머니라면 할머니 모습으로 찍고, 아재라면 아재 모습으로 찍고, 할배라면 할배 모습으로 찍으면 그만이다.


  보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니한테 ‘프로필 사진’ 따위는 없다. 그저 ‘이야기 할머니’답게 찍었다. 더 젊거나 더 예쁘거나 더 멋지거나 더 눈부시거나 더 돋보이거나 더 남다르거나 더 잘난 모습으로 꾸며서 ‘프로필 사진’에 힘을 들이붓는 이가 있다면, 그런 이가 쓴 글이나 책은 걸러낼 노릇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온사랑으로 담은 책”을 살피고 장만하고 읽고 새기고 나누고 곁에 둘 노릇이다. 부디 서로서로 “한국적인 외모”라든지 “서구적인 외모”처럼 스스로 갉고 할퀴는 멍청한 말은 걷어치우기를 빈다. 잎샘바람이 누그러들고서 봄맞이비가 가볍게 흩뿌린 하늘을 헤아리면서 “이렇게 바람과 비가 지나간 밤에는 별이 쏟아지면서 반짝반짝 아름다워요!” 같은 이야기를 하자. 2026.2.1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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