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트는 손등



  어제그제 잎샘바람이 쩌렁쩌렁 휘파람마냥 불어온다. 오늘도 꽃샘바람은 큰소리로 몰아친다. 높녘은 꽤 추울 텐데, 첫봄을 앞두면서 골골샅샅 파랗게 틔우는 길이라고 느낀다. 마녘도 제법 얼지만 늦겨울인걸. 이렇게 휭휭 회오리처럼 바람꽃이 피면 어느 누구도 “포근한 겨울”이라고 걱정하지 않으리라. 여름은 덥다가도 시원한 철이고, 겨울은 춥다가도 포근한 철이다. 모든 바람은 언제나 알맞게 갈마든다.


  벼락바람이 감돌지만 소매를 걷고서 걷는다. 책짐을 이고 들며 걷는다. 손가락이 얼어도 왼손에 책을 쥐고서 걷는다. 곧 시외버스를 타면 더워서 언손이 다 녹으리라 본다. 읽고 쓰려고 두 손을 찬바람에 내놓고 다니느라, 손등이 허옇게 트다가 핏망울이 맺는다. 뜨끔뜨끔 찌릿찌릿 받아들인다. 따끔따끔 찌르르르 맞아들인다.


  붓을 더 쥐기 어려우면 책을 보따리에 넣고서 손을 주머니에 찌른다. 이 겨울에 날아다니는 새를 살피고, 길나무는 어떠한지 들여다본다. 바람 따라 하늘이 맑게 트이는 빛살을 지켜보다가 다시 책을 꺼내어 읽는다. 읽고 쉬고 쓴다. 새삼새삼 읽고 쉬고 쓴다. 또 읽고 쉬고 쓴다.


  사상나루 시외버스 둘레로 비둘기가 종종종 걷는다.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며 언손을 녹이다가 ‘부산-완도’ 시외버스를 탄다. 순천서 내려 갈아타야지. 오늘은 부산 마을책집 〈책과아이들〉에서 이웃님 그림판을 천천히 자리잡아 놓았다. 어쩐지 ‘책집 이웃일꾼’이 된 듯하다. 마을책집에 처음 눈뜬 1992해부터 여태 ‘책집손님’으로 오래오래 드나들었는데, 문득 새자리를 누리는구나 싶다. ‘책집단골’은 어느 책집을 서른 해 남짓 드나들며 “그곳에서만 사들인 책이 3000자락”이 넘어야 한다고 여기는데, ‘책집단골’이라는 이름을 지나가면 ‘책집이웃’으로 서는구나 싶다.


  아프기에 스스로 몸을 안고서 고즈넉이 풀고 맺는 숨길을 찾아본다. 앓기에 스스로 마음을 아우르고서 고요히 품고 펴는 숨소리를 돌아본다. 우리 곁에 있는 어른이란, 저마다 아프거나 앓는 곳을 가만히 달래며 부드러이 웃는 분이지 싶다. 우리 둘레에서 뛰노는 아이란, 스스럼없이 자라나며 말꼬를 트고 숨꽃을 틔우는 신바람이지 싶다. 갓 태어나서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고서 눈감은 두 어른, 이오덕·권정생 두 분은 내내 앓고 아픈 삶을 지냈다. 내내 앓느라 스스로 알아가야 했고, 내처 아프느라 스스로 아우르고 달래면서 피어나려고 했다고 느낀다.


  나는 나아간다. 너는 날아간다. 우리는 함께 걷는다. 이제 서로 마주본다. 시외버스가 움직이려고 하니 비둘기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내도록 얼며 찌릿찌릿 쓰라린 손등과 팔뚝이 조금조금 녹는다. 이제 손가락을 놀릴 만하니 이틀치 밀린 하루글부터 쓰자. 그런데 손가락이 녹으니 슬슬 졸립네. 그래, 졸리면 좀 눈을 감고서 더 쉬어야지. 제대로 졸고, 실컷 자고 나더라도, 부산에서 순천까지 한참 걸리니, 포근히 꿈길을 가고서 다시 일어나자. 2026.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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