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다시 만나서



아직 안 배우기에 다시 만나는 사람과 일과 말과 하루야. 왜 또 아침이 오겠니? 어제까지 영 못 배웠으니, 오늘은 좀 배우라는 뜻으로 찾아온단다. 어제까지 기쁘게 배웠으니, 이제 다시 만나서 배우라는 뜻으로 새날이 밝아. 못 배운 일을 하나씩 배워가지. 안 배운 일을 새록새록 배워. 이미 배운 일은 이미 지나갔으니 다시 배운단다. 아마 너는 “삶은 늘 배우는 날이야?” 하고 물을 만해. 안 배웠기에 배우라 하고, 배웠으니까 다시 배우라 하거든. 그래, ‘살다 = 배우다’라 할 만하지. ‘live = learn’이라 할 테지. ‘살’려면 ‘숨’을 늘 새로 받아들인단다. 바람(공기)과 물을 이 숨결 그대로 받아들여. ‘배우다’란 ‘배’로 받는 일이야. “몸에 배다”라 하지. 바람·빛·물을 몸에 받아들이듯, 숨·씨·길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배려고(받아들이려고)’ 이곳에 몸을 입고 태어나서 하루를 그리고 맞이한단다. 모름지기 ‘배우’려고 태어나는데, ‘배우’려는 뜻을 잊고 잃은 채 불늪(입시지옥·대입공부·취업지옥)에서만 허덕인다면 무슨 삶일까? 값(점수)을 따려고 달달 외우는 짓은 ‘배움길’이 아니라 ‘길들이기’란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 높은 졸업장을 따려고, 어린날과 젊은날을 바치는 짓은 ‘배움길’이 아니라 ‘불길’이자 싸움길이고 죽음길이란다. 여태 안 배웠으니 이제 배울 하루야. 여태 배웠으니 다시 만나서 다시 배우는 오늘이야. 배우고 또 배우고 다시 배우고 거듭 배울 적에 눈이 밝아서 언제나 튼튼하단다. 안 배우려는 사람은 ‘늙어’서 ‘낡’은 몸에 얽매이다가 ‘가루’가 돼. 2026.1.24.흙.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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