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사회적인
모여살기에 ‘모둠살이’라 하고, ‘마을’이라 하는데, 이러한 터전을 ‘사회’라고 일컬어. 모여살 줄 알기에 ‘사회성·사회적’이라고 하는데, “사람만 모이는” 곳이라면 오히려 “사람부터 못 보거나 안 보기” 일쑤이더구나. 왜 그렇겠니?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 터전이나 마을에 ‘사람만’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기겠니? 들숲메·풀꽃나무·해바람비를 내쫓거나 새·짐승·벌레를 밀어낸 ‘사람터(사회)’에서는 그만 사람끼리 악쓰며 싸우고 말아. 몸뚱어리를 잡아먹지는 않지만, 마음을 잡아먹고 할퀴고 갉지. 해가 골고루 비추고 바람이 푸르게 불고 비가 싱그러이 내리는 터전이어야 비로소 사람 사이에 나란히 햇볕이 따스하고 바람이 밝고 빗물이 맑아. 온누리 모든 서울(도시)을 보렴. 어느 나라 어느 서울이든 매캐하고 갑갑하고 시끄럽고 뿌옇고 어지러워. ‘사람터’인데 오히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어려운 나머지, 사람들 스스로 ‘살아남’거나 버티려고 악착같고 다투고 빼앗고 노리고 시샘하고 따돌려. 이러면서 끼리끼리 담벼락을 둘러치고 올리네. ‘나눔길’이 아니라 ‘혼자차지’로 굴러떨어져. ‘사회성·사회적’이란 뭘까? 이웃을 안 보고 내쳐야 ‘사회성’일까? 동무를 따돌리고 괴롭히며 길미를 긁어모아야 ‘사회적’일까? 남하고 똑같이 맞춰야 하니? 남보다 낫거나 높거나 커야 하니? 숲빛을 잊은 곳은 삶터일 수 없어. 들빛을 몰아낸 곳은 살림터가 아니야. 풀꽃과 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퍼뜨리지 못 하는 곳이며, 새가 날아앉아 노래할 곳을 빼앗으면 ‘사람터’하고 멀어. 2026.1.22.나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