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사회성 또는 “사회성 없는 아이”



  우리집 두 아이는 ‘굴레(졸업장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두 아이가 저마다 다른 뜻으로 스스로 골라서 걸어가는 길이다. 제대로 안 보려고 하는 분이라면 “파란놀 씨 그대가 대학교를 자퇴했대서 아이까지 함부로 학교에 안 보내지 않나요?” 하고 따지거나 캐묻는다. 터무니없으니 그저 빙그레 웃는다. 나는 낱말책을 새로짓는 일꾼이기에 ‘이러쿵저러쿵’을 안 한다. 낱말지기(사전편찬자)는 좋은말과 나쁜말을 안 가리면서, 모든 낱말이 저마다 빛이 흐르는 씨앗인 줄 느껴서, 모든 낱말을 그저 그 낱말에 깃드는 숨빛에 따라서 다 다르게 풀어내고 밝히고 알려서, 누구나 온누리 모든 낱말을 ‘말씨(말씨앗)’로 삼는 길잡이를 보여주는 몫이다.


  나는 두 아이를 굴레(졸업장학교)에 안 넣을 뜻도 넣을 뜻도 없이,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왔고, 함께 살아가며, 함께 살아내는 나날을 그린다. 그러니까, 두 아이가 굴레이자 늪인 졸업장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면, “졸업장학교를 다니면서도 스스로 넋을 돌보고 마음을 가꾸고 몸을 북돋아서 삶을 짓는 길”을 들려주고 함께하는 길을 미리 헤아려 놓았다. 두 아이가 집에서 스스로 살림을 지으며 배움길을 닦고 싶다고 고른다면, 이때에는 이때대로 두 아이랑 보금자리를 보금숲으로 가꾸면서 나란히 어울리는 살림노래를 미리 헤아렸다. 두 아이가 어느 길을 스스로 고르든 모두 기꺼이 북돋우려는 밑틀을 마련할 뿐이다.


  굴레나 늪에 아이를 넣기에 잘못이지 않다. 굴레나 늪에 아이를 안 밀어넣기에 잘하는 삶이 아니다. 그저 다른 길이다.


  “학교를 다니기에 사회성 발달에 좋다”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와 푸름이”이 입과 손이 얼마나 거칠고 막되는 줄 모르나? 모르는 척하나? 아니, 아이를 학교에 밀어넣기만 할 뿐,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이하고 마음을 나누는 말”을 하루 1분조차 안 하기에, 참말로 그대 아이들이 얼마나 막말을 아무렇게나 어디서나 추레하게 늘어놓는 줄 모를 수 있다.


  졸업장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어버이가 언제나 아이하고 날마다 두런두런 자잘한 수다부터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를 두로 할 적에, 어느 집 어느 아이라도 ‘밝다(사회성 있다)’. 아이하고 말을 안 섞거나 ‘입시·공부 부담’만 들씌우는 굴레라면, 아무리 말을 섞는 듯 보여도 “아이어른이 암말도 안 한 셈”이다. 이를테면, “베네수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학교를 못 열어서, 베네수엘라 가난한 아이들은 길에서 떠돌거나 놀기만 하는데, 기름(석유)을 그토록 뽑아올려도 왜 나라는 가난하고 그곳 아이들은 배움길이 막혀서 일찌감치 텃나라를 떠나서 돈벌이를 찾아야 할까?” 같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집에서 아이어른이 머리를 맞대고서 할 노릇”이다.


  사이치기(갭투자)로 길미를 거둬들이는 ‘아파트 투기’나 ‘환치기’나 ‘주식투자’나 ‘복권 요행수’가 아닌, “우리가 사람답게 살림하며 사랑하는 하루란 무엇일까? 그나저나 ‘사람’과 ‘사랑’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같은 이야기를 모든 집에서 모든 아이어른이 날마다 두런두런 말을 섞을 노릇이다. 이런 말을 두런두런 섞을 줄 안다면, 아이를 굴레(졸업장학교)나 늪(입시지옥)에 밀어넣더라도, 그 집은 아이어른이 느긋하면서 참하고 착하고 즐겁게 밝은빛(사회성)으로 온누리 누구하고나 어울리면서 아름답게 일하고 노래한다.


  삶길(지식)은 책에서만 얻지 않는다. 삶길은 삶에서 얻어야지. 삶길은 저마다 삶으로 지어야지. 여러 이웃이 지은 삶을 담은 알뜰한 책도 곁에 두되, 누구나 이녁 손으로 살림을 빚고 짓고 돌보고 가꾸고 일구고 심고 나누고 베풀면 된다.


  이제는 좀 눈떠야 하지 않나? ‘밝빛(사회성)’은 학교에 없다. ‘밝노래(사회성)’는 오직 ‘이야기’에 씨앗(말씨앗)으로 흐른다.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밝고 맑게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지핀다. 이야기 안 하는 굴레와 늪이기에 그만 동무를 괴롭히거나 밟으려 한다. 이야기란 없이 굴레와 늪에서 허덕이니까 어느새 이웃을 깔보거나 놀리거나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질한다. 이야기 없이 집에서 멀뚱멀뚱 밥만 먹으니 도무지 별빛(사회성)이 싹트지 못 한다.


  우리는 누구나 별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별이다. 우리는 누구나 별씨요, 별빛이다. 우리는 이미 빛(사회성)을 타고났다. 우리가 아기일 적부터 몸에 품은 빛을 그저 펴고 펼치고 나누면서 어깨동무하면 느긋하다. 굴레(졸업장)에서 뜬금없이 씨앗(사회성)을 찾으려고 하지 말자. 우리 마음에서 샘솟는 물줄기(사회성)를 기꺼이 나누면서 춤추고 노래하면 된다. 2026.1.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