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 일상시화 4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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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빛꽃 / 사진비평 2026.1.24.

사진책시렁 183


《사진과 시》

 유희경

 아침달

 2024.8.1.



  우리집 두 아이를 늘 데리고서 두바퀴(자전거)에 태워서 고흥 모든 곳을 다녔고, 이동안 신나게 찰칵찰칵 찍었습니다. 이렇게 찍은 그림 가운데 얼마쯤 종이에 뽑아서 보임마당을 이럭저럭 꾸리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을 본 분들은 “이 아름다운 들숲바다가 어디예요?” 하고 묻곤 하는데, “딴 데가 아니고, 제가 사는 전남 고흥입니다.” 하면 하나같이 “외국이 우리나라, 아니 고흥이라고요?” 하며 놀랍니다. 누구보다 고흥사람이 가장 놀랍니다. 어느 날에는 저한테 “사진 참 잘 찍으시네요.” 하고 말씀한 분이 있는데, 옆에서 듣던 큰아이가 “아니,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어야지요? 너무 뻔한 얘기 아녜요?” 하고 되묻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진을 잘 찍지 않고, 글을 잘 쓰지 않고, 일을 잘 하지 않고,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담을 빛을 찍고, 제가 옮길 빛을 쓰고, 제가 나눌 빛을 말로 싣고, 제가 지으려는 일을 늘 그저 할 뿐입니다.


  《사진과 시》는 노래(시)를 쓰고 노래책집(시집전문서점)을 꾸리는 분이 빛꽃하고 얽혀 겪거나 돌아본 나날을 글로 갈무리한 꾸러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별에서 살아가고, 이 별에서 말글을 나누고, 이 별에서 삶을 노래하고, 이 별에서 이따금 찰칵찰칵 찍습니다. 모든 일은 다 다릅니다. 높거나 낮지 않습니다. 훌륭하거나 모자라지 않아요. 다만 하나는 늘 있어요. 잘 하려고 하거나 잘 보이려고 하거나 잘 팔려고 하거나 잘 쓰려고 할 적에는 언제나 겉치레로 기울어요. “그저 삶으로”가 아닌 “잘 쓴 글”이나 “잘 찍은 빛꽃”으로 한 발짝이라도 담그려고 하면 몽땅 일그러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노래책(시집)을 보면, 책끝에 붙는 빗글(비평)이 어느 나라 말이나 글인지 종잡을 길이 없습니다. 일본옮김말씨가 범벅인 채 잔뜩 꾸미고 추켜세우는 높임잔치(주례사비평)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진비평·사진에세이’도 하나같이 일본옮김말씨에 높임잔치입니다. 그저 빛을 말하면 되고, 그저 빛을 그리면 되고, 그저 빛을 빚으면서 비우고서 비다듬으면 됩니다. 꾸미거나 시늉할 까닭이 없습니다. ‘꾸미기’가 아닌 ‘꾸리기·가꾸기·일구기’를 할 노릇입니다. 문학창작과 문학평론뿐 아니라 사진창작과 사진평론도 “일곱 살 아이를 곁에 두면서 들려주는 말로 고스란히 옮기는 과 그림”으로 가다듬을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빛납니다. 껍데기를 벗고서, 겉치레를 치울 때에, 글을 쓰고 말을 하고 노래를 하고 빛을 담고 이야기를 편다고 할 만합니다.


+


내게 못되고 이기적인 구석이 있다면 이 역시 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29쪽)


그가 미웠다. 그처럼 살기 싫었다. 그를 닮은 내가 싫었다. 아직도 나는 내 안의 그와 반복하여 반목하고 화해한다. 멀리서 유전되어온 역상이다. (30쪽)


《사진과 시》(유희경, 아침달, 2024)


이제부터의 나의 글은 사진의 원리나 속성에 대한 고찰이 될 수 없다

→ 이제부터 이 글은 빛꽃이 어떤 길이나 속인지 다룰 수 없다

→ 이제 내가 쓰는 글은 빛꽃이 어떤 길이나 속인지 살필 수 없다

5쪽


사진과 시라는 매체를 수용하고 수행함으로써 발생해온 나 자신에 대한 중얼거림

→ 빛꽃과 노래라는 노둣길을 맡고 따르는 동안 중얼거린 말

→ 빛그림과 글이라는 길을 받아들이고 펴면서 혼자 읊은 말

5쪽


사진은 보여줄 뿐이며 보여준 뒤 굳게 침묵을 지킨다

→ 빛꽃은 보여줄 뿐이며 보여준 뒤 굳게 입을 다문다

→ 빛그림은 보여줄 뿐이며 보여준 뒤 굳게 말이 없다

5쪽


쓸 때의 태도도 원고의 내용도 사담이 아닐 수 없었다

→ 쓰는 매무새도 줄거리도 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 쓰는 길도 이야기도 삶글이 아닐 수 없다

→ 쓰는 결도 글자락도 수다가 아닐 수 없다

6쪽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기어코 관철시켰을 것이다

→ 꾸러미가 아니라면 끝내 밀었다

→ 모둠이 아니라면 끝까지 밀어넣었다

6쪽


각기 다른 곳에 기착하여 쌓여가고 있다

→ 다 다른 곳에 들르며 쌓여간다

→ 모두 다른 곳을 거쳐 쌓여간다

→ 서로 다른 곳에 서서 쌓여간다

18쪽


두 개의 렌즈를 가지고 있다

→ 눈이 둘이다

→ 눈이 둘 달린다

→ 두 눈이 있다

22쪽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시각적 혼란을 겪게 된다

→ 처음 보는 사람은 눈이 어지럽다

→ 처음 보면 어지럽게 마련이다

29쪽


내게 못되고 이기적인 구석이 있다면 이 역시 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 내가 못되고 나만 안다면 이 또한 그한테서 물려받았다

→ 내가 못되고 고약하다면 이 또한 그가 물려주었다

29쪽


상황도 장소도 언어화되어 사진을 둘러싼다

→ 때도 자리도 말이 되어 빛꽃을 둘러싼다

→ 바람도 곳도 말로 바뀌어 그림을 둘러싼다

33쪽


가을 초입. 나의 아버지 유성근 씨는 자신의 아내이자 나의 어머니

→ 가을 어귀. 우리 아버지 유성근 씨는 곁님이자 우리 어머니

→ 가을 무렵. 아버지 유성근 씨는 짝꿍이자 어머니

48쪽


그 사실에는 부재와 상실도 없고 초라함이나 군색함 따위도 없었다

→ 이렇더라도 없거나 망가지지 않고 초라하거나 가난하지도 않다

→ 이 일로 사라지거나 잃지 않고 초라하거나 추레하지도 않다

→ 이와 같아도 비거나 앗기지 않고 초라하거나 못나지도 않다

56쪽


셔터의 소리는 두 개의 음절을 갖는다

→ 여닫개는 두 가지 소리를 낸다

→ 누름쇠는 두 마디로 소리난다

→ 찰칵은 두 마디이다

98쪽


실명한 것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 눈멀고 나서 일터를 그만두었다

→ 눈잃고 나서 일터를 그만두었다

113쪽


시에 있어서는 빈 종이를 앞에 둔 시간이다. 빈 종이는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닌 진실로 비어 있는 종이

→ 노래로는 빈종이를 앞에 둔 때이다. 빈종이는 그냥그냥 무엇이 아닌 참으로 빈종이

→ 글로는 빈종이를 바라보는 오늘이다. 빈종이는 붕뜨지 않고서 그야말로 빈종이

134쪽


빈 종이 위에 적혀 있는, 실로 있음에 대해 괴로워한다

→ 빈종이에 적혀서 여기에 있으니 괴롭다

→ 종이에 적히고 이곳에 있으니 괴롭다

135쪽


텍스트는 읽기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

→ 글은 읽어야 산다

→ 읽을 적에 글이 있다

→ 읽기에 글이 흐른다

→ 글은 읽을 적에 피어난다

→ 글은 읽을 적에 깨어난다

→ 글은 읽을 적에 일어난다

14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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