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안 읽고서 쓴
갈수록 “안 읽고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는다. 부쩍부쩍 는다. 안 읽고서 별꽃(평점)을 다는 사람도 많다. 어느 책이나 영화를 놓고서 한 줄이건 한 마디이건 하더라도, 이 책이나 영화를 “적어도 두어 벌”은 보고 나서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꽃을 본 적이 없이 꽃냄새를 ‘책(식물도감)’에서 들춰본 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얼마나 거짓스러울까. 제비나 꾀꼬리나 후투티나 매를 본 적이 없이 날갯짓과 노랫소리를 ‘책(조류도감)’에서 훑어본 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얼마나 후줄근할까. 첫겨울바람과 한겨울바람과 늦겨울바람이 저마다 어찌 다른지 온몸으로 맞이하지 않고서 ‘책’에서 슥 본 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얼마나 겉치레일까.
두어 벌 보더라도 모자라다. 서너 벌을 지나고 대여섯 벌을 지나며 한참 곱씹을 노릇이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티를 드러내는 ‘겉글’은 누구보다 ‘겉글꾼’한테 불씨로 스민다. 알찬 책이건 모자란 책이건 대수롭지 않다. 어느 책이건 스스로 삶을 들여서 곰곰이 읽은 ‘마음’을 쓸 노릇이다. 모든 느낌글은 ‘책쓴이’가 아니라 ‘읽고서 쓴 이’한테 이바지한다.
책이든 글이든 ‘말’로 풀어내는 삶이다. 책이나 글을 풀어내는 말에 스미는 낱말을 짚으면, 책쓴이나 글쓴이가 걸어온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말결을 가꾸는 사람은 언제나 어린이 곁에 서려는 마음으로 낱말을 고른다. 배우면서 책과 글을 쓰는 이라면, “이미 나는 아직 멀었지만, 이만큼 배운 바를 둘레에 나누고서 이제부터 새로 배우려고 해.” 같은 마음이 돋보인다. 빈틈없이 쓰는 책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책은 책쓴이 스스로 배움길인 줄 밝히는 씨앗이다. 책을 마쳐서 내놓을 적부터 새걸음을 떼며 다시 배운다.
배우며 나누려는 마음이 아니면서 책을 내는 이는 글빗(비평)을 꺼리거나 닫거나 막거나 등진다. 안 배우고 안 나누려는 마음일 적에는 ‘자랑’이자 ‘책팔이’에 갇힌다. 배우기에 늘 듣고 읽는다. 배우기에 새소리와 풀소리와 나비소리와 나무소리와 바람소리와 바닷소리와 빗소리에 귀기울이며 기쁘게 배운다. 버우기에 아기랑 마음을 나누고, 배우기에 할매할배한테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일으켜세운다.
책을 읽고서 책을 쓰면 헛바퀴라고 느낀다. 우리 손은 살림을 지으며 삶을 배우고서 사랑을 펴려는 뜻으로 있다. 우리 발은 이웃한테 찾아가고 이 땅에 든든히 서서 나무 곁에서 배우고 춤추라는 뜻으로 있다. 우리 눈은 별과 바람과 꿈을 보고 배워서 지으라는 뜻으로 있다. 우리 귀는 숨소리를 들으며 풀벌레노래를 사랑하고 배우라는 뜻으로 있다.
읽고서 쓸 글이자 마음이고 하루이다. 안 읽고서 쓰는 글이 흘러넘치는 나라에서는 사랑씨가 마르고 노래씨가 잊히고 꿈씨가 사그라든다. 오늘(1.8.)은 길을 걸으며 책을 읽다가 손가락이 꽁꽁 언다. 그래도 끝까지 읽고서 책을 덮는다. 언손은 녹이면 되니까. 언손은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버스에서 녹이면서 노래를 한 자락 쓰면 되니까. 한겨울이 무르익으니 17시가 넘어도 아직 환하다. 즐겁다. 2026.1.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