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팩트체크
삶은 무엇일까. 삶은 누가 어떻게 짓는가. 우리는 이곳에 왜 태어나서 왜 다른 몸과 마음을 입고서 만나고 헤어지고 어울리나. 너랑 나는 뭐가 다르고 나란하고 같을까.
지난 몇 해 사이에 ‘팩트체크’라는 말이 무섭게 번지더니, 이제는 이 말을 쓰는 글바치가 드물다. 누가 옳으니 그르니 가르면서 “넌 틀렸으니 입다물어!”라는 주먹질이 허벌나게 춤추었는데, ‘날개(인권+자유)’를 돌보려는 목소리는 거의 죽어버리시다시피 했다. 이 나라가 ‘민주’라면 모든 길(정보)을 다 열고 밝히면서 이야기할 노릇이다. ‘백신’에 무엇을 넣는지 숨기기만 했고, 백신을 맞고서 얼마나 많이 죽거나 다쳤는지 여태 나라에서 밝힌 바가 없다.
날마다 감을 한 알씩 마당에 놓으면, 겨우내 먹이찾기에 버거운 멧새가 내려앉아서 쫀다. 새는 감알이 어떻게 땅바닥에 있는지 궁금하려나. 어제 틀림없이 쪼아먹었는데 오늘 왜 또 생기는지 궁금할까. 이튿날 또 감알이 놓일는지 궁금하려나. 다른 집에는 없는 과일이 왜 이 집으로 날아오면 느긋이 누릴 수 있는지 궁금할까.
돌림앓이란 이름으로 퍼트린 ‘생화학무기’가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민낯을 벗겨야 할 텐데, 서울에서 먹고살기에 바쁘면 제대로 눈뜰 길이 없다. ‘플라스틱 입가리개’로 돌림앓이를 못 막을 뿐 아니라 외려 ‘숨막혀죽는’데, 이를 뉘우치거나 속내를 들려주는 ‘착한 과학자나 의사’는 몇쯤 있을까? ‘마스크 장사’와 ‘백신 장사’로 떼돈을 번 무리가 누구인지 속속들이 밝힐 글바치(기자·작가)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먹느냐는 대수롭고, 무슨 마음으로 먹느냐는 훨씬 대수롭다. 잔칫밥이나 깨끗밥(친환경 유기농)이라서 늘 살리지 않는다. 무섭고 사나운 곳에서 억누른다면 도루묵이다. 좁은 가두리에 몰아놓고서 인삼을 먹이면 안 아프고 튼튼할까? 들숲메를 등진 곳에서 백신만 맞으면 멀쩡할까? 손바닥만 한 쇠우리에 갇힌 닭이 ‘한약재 섞은 비싼모이’를 먹으면 사람한테 이바지할 달걀을 낳을까?
대학교나 대학원을 마쳐야 글을 잘 쓰거나 읽지 않는다. 등단을 하거나 문학상을 타야 제대로 쓰거나 읽지 않는다. ‘시인·소설가·수필가·평론가·에세이스트·작가·예술가’ 같은 이름을 써야 글을 사랑으로 쓰거나 읽지 않는다. 안 숙이고 안 감추어야, 손수 삶과 살림을 지어야, 스스로 사랑으로 빛나야, 아이 곁에서 보금자리를 지어야, 비로소 참하게 쓰고 읽고 나눈다.
누구나 골(뇌)이 있다. 누구나 골이 가장 훌륭하고 빼어나고 슬기롭고 오롯한 셈틀(컴퓨터)이다. 누구나 스스로 속빛을 바라보고 들여다보며 눈뜰 적에 깨어난다. 지난날 이 나라는 마을과 집집마다 볍씨가 달랐다. 콩씨도 밀씨도 보리씨도 무씨도 다 달랐다. 다 다른 터전과 날씨와 해바람비와 흙과 사람에 따라서 모든 씨앗이 달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씨바꿈(품종개량)’이라는 이름으로 다 다른 땅에서 그저 똑같은 씨앗만 기계·농약·비료·비닐을 써서 똑같이 키워서 팔고 먹어야 한다.
열쇠를 파려고 고흥읍에 나온다. 열쇠집 네 곳을 도는데 이제 아무도 열쇠를 안 판다. 시골이란 이제 이렇지. 귤 한 꾸러미를 산다. 볼일은 못 보지만, 아이들과 곁님과 새하고 나눌 과일을 챙긴다. 2026.1.1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