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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ㅣ 창비시선 427
김사이 지음 / 창비 / 2018년 12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1.4.
노래책시렁 529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김사이
창비
2018.12.7.
내가 무엇을 하건 내가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남은 나더러 이러쿵저러쿵 시킬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손수짓기라는 살림길을 안 갈 적에는, 남이 맡기는 대로만 몸을 움직인다는 뜻이니, 이때에는 ‘남눈’과 ‘남말’에 따르는 얼거리입니다. 지난날에 ‘일꾼’은 손수짓기입니다. ‘일’이란, 바람과 바다가 일듯 스스로 움직이는 살림빛을 나타냅니다. 오늘날에 ‘노동자(勞動者)’는 심부름꾼입니다. ‘노동자’는 몸쓰는 사람입니다. 남이 마련한 틀(기계)을 다뤄서, 남이 맡기는 대로 팔것(상품)을 똑같이 끝없이 뽑아내는 몫입니다. 손수짓기라는 살림빛을 담아낸다면 ‘일글·살림글·사랑글·사람글’로 잇습니다. 심부름꾼(노동자)이라는 몸쓰기를 옮긴다면 ‘노동문학’은 되지만 ‘스스로서기’하고는 되레 멀게 마련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는 여태껏 ‘남이 나를 쳐다본’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내가 남을 쳐다본’ 줄거리를 곁들입니다. ‘나·너·우리’가 아닌 ‘나·남·놈’이라는 틀이에요. 손수짓기란, 스스로짓기이고, 스스로서기입니다.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손수지을 적에는 부아를 내거나 칼을 휘두르지 않아요. 심부름꾼으로 돈을 벌려고 몸만 쓸 적에는 자꾸자꾸 눌리고 아프고 고되어 그만 ‘누가 날 이렇게 구렁으로 내모나?’ 하면서 불길을 쏟아낼 데를 찾아나서다가 이 삶을 자꾸 잊고 등집니다. 노동문학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렇다고 문화예술이라는 허울이 아닌, 그저 ‘말과 글’을 한 땀씩 담기를 바라요. 이제부터는 ‘돈벌자리’가 아닌 ‘살림자리’를 바라보기를 바라요. 〈예감〉이나 〈생각도 습관이 된다〉는 바로 노동문학이란 굴레에 갇혀서 뱉어내는 불씨입니다. 〈새벽〉이나 〈춤추는 어머니〉는 살림하며 스스로서려는 마음을 문득 바라보면서 놓는 풀씨입니다.
ㅍㄹㄴ
낮술에 취한 남자씨들이 비틀거린다 / 인도를 장악하고 갈지자로 걸어온다 / 느닷없이 달려드는 일상의 예감들 / 차도로 내려설까 뛸까 망설이다가 (예감/14쪽)
동생과 싸우다가 하필 밥상을 찼다 발동 걸린 듯 칼 들고 설치다가 정신 들어 풀썩 주저앉았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폭군 아버지들을 보며 여자 때리는 남자는 상종 않겠다고 이만 갈았다 누구 아버지가 그랬고 또 누구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툭하면 밥상 엎는 사람에게 바로 그 얼굴에다 밥상을 던져버리리라 가슴에 불만 켰다 (생각도 습관이 된다/37쪽)
모내기를 준비한 논에 하늘이 담겨 / 살고자 하는 것들이 깨어 빛나는 새벽 / 긴 하루하루, / 새벽빛에 쭈그려 앉은 / 아짐들의 배가 둥글어졌다 (새벽/57쪽)
춤을 추는 어머니 / 처음 본다 //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 시간 속으로 / 붉게 붉게 물들어간다 (춤추는 어머니/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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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김사이, 창비, 2018)
종일 배달하고 늦은 밤 내 관(棺)으로 돌아와
→ 내내 나르고 늦은밤 죽음널로 돌아와
→ 온하루 나르고 늦은밤 집으로 돌아와
11쪽
남근들에게 노동의 댓가는 여자씨
→ 고추한테 일삯은 아가씨
→ 작대기한테 땀값은 순이씨
30쪽
가난한 목숨들은 불행의 지분이 많다
→ 가난한 목숨은 눈물몫이 많다
→ 가난한 목숨은 슬픈모가치 많다
→ 가난한 목숨은 그늘깃이 많다
32쪽
아짐들의 배가 둥글어졌다
→ 아짐은 배가 둥글다
57쪽
떨림도 그리움도 버린 삼류들의 쓸쓸한 길
→ 안 떨리고 안 그리운 떨거지 쓸쓸한 길
→ 떨지도 그립지도 않은 주저리 쓸쓸한 길
68쪽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일일주점을 연다니
→ 깔끔지기 하루술집을 연다니
→ 깨끗일꾼 하루술집을 연다니
78쪽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공범의 정치 공생(共生)하자며 공사(共死)로 간다
→ 아무도 값을 안 치르는 한통속판 함께살자며 함께죽기로 간다
→ 아무도 떠맡지 않는 한무리판 같이살자며 같이죽기로 간다
81쪽
쓰레기더미들이 방향 잃은 난상토론
→ 쓰레기더미가 길잃고 모두수다
→ 쓰레기더미는 길잃어 이야기꽃
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