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겨울더위
겨울추위가 아닌 겨울더위가 도사리는 서울과 큰고장이다. 시외버스뿐 아니라 시내버스와 전철도, 가게도, 땅밑길도, 온통 여름이다. 길손집마저 미닫이를 활짝 열어도 후끈하다. 이런 날씨에 두툼옷이나 긴옷은 거추장스럽다. 푹푹 찌는 뜨겁바람이 감돌면서 둘레에서는 철을 잊는다. 여름이어도 여름을 잊고, 가을이어도 가을을 잊으니, 겨울도 그냥 까무룩 잊는다. 철을 잊기에 마음빚을 잊는 듯하다. 철을 등지면서 풀콫나무하고 나란한 사람빛을 어느새 잊을 테고.
겨울이니까 찬바람과 얼음은 마땅하다. 추워서 손이 곱고 입김이 하얗게 피어야 맞다. 춥기에 웅크려야 맞고, 몸을 녹이려고 걷거나 달리거나 뛰어야 맞다. 겨울이니 찬물에 손을 담글 적마다 오들오들 소름이 돋아야 맞다. 한겨울에 찬물로 씻고 빨래하면서, 새봄이 오는 길을 그리고 바라고 노래하고 꿈으로 담아야 맞다.
겨우내 찬바람을 머금으니 밀과 보리가 싱그럽다. 봄동에 겨울무는 찬바람을 받으면서 알차다. 흰눈이 덮으니 마늘은 한결 속이 깊다. 새봄에 갓 돋는 모든 풀싹은 겨우내 얼음바람을 실컷 받아들였기에 야물다. 사람도 같다.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잔앓이가 사그라든다. 겨울에 꽁꽁 얼면서 온몸에 새빛이 흐른다. 봄에 새볕을 맞이하니 가만히 무르익는다. 가을에 익는 열매를 누리고 나누면서 몸마음이 함께 거듭난다.
겨울추위가 사람을 살리고 들숲메바다를 북돋운다. 겨울바람이 숨결을 틔우고 겨울눈송이가 밤마다 별을 찾는다. 여름더위가 살림살이로 잇고 해바람비를 퍼뜨린다. 여름비가 숨소리를 열고 낮마다 온누리를 일으킨다.
겨울꽃이 핀다. 이 겨울에 피는 꽃은 부드럽게 속삭인다. 겨울풀이 돋는다. 한겨울에 돋는 풀은 살랑살랑 춤빛이다. 시골도 서울도 길거리와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프고 앓는다. 줄기가 뎅겅 베이고, 가지가 줄줄이 잘린다. 팔다리를 빼앗긴 나무는 울면서 가늘게 가지를 다시 내놓으려 한다. 잎망울과 꽃망울이 조물조물 맺는다.
이제 작은책집 한 곳을 들르고서 전철을 기다린다. 버스나루에 닿으면, 고흥버스를 타기까지 조용히 책밭을 짓고 글밭을 여며야지. 흙을 못 밟고 새를 못 만나는 서울길이지만, 손바닥에 쥐는 책에서 흙내음과 새소리를 살핀다. 이 손에 쥐는 붓에 별빛과 잎빛을 옮겨야지. 2025.12.3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