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옆마을로
이른아침에 달렸다. 옆마을로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잡으려는 길이었다. 한겨울 아침달리기는 즐겁다. 그저 이제는 논둑길도 모조리 잿더미(시멘트)라서 딱딱할 뿐. 아이어른이 걷는 곳이라면 잿더미로 뒤덮을 까닭이 없으나, 쇠(농기계+짐차)가 드나들려면 풀밭이 싫을 수 있다.
등짐을 내려놓고서 숨을 돌린다. 기지개를 켜고서 글종이를 꺼낸다. 여러 날 띄엄띄엄 쓴 노래를 천천히 옮겨쓴다. 하루에 한두 가지씩 누구나 노래를 쓰고서 읊고 나눌 수 있으면, 파란별에 늘 파란바람이 싱그러우리라 본다. 놀며 노래하면 된다. 허울(문학+창작+예술)을 벗으면 누구나 노래님이요 노래꽃이다. 허울을 쓰니까 시인에 작가에 예술가이다.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08:30에 고흥읍에서 움직인다. 나는 시외버스를 코앞에 둘 때까지 09:10으로 잘못 보았다. 09:10은 부산 가는 시외버스인데, 자칫 서울버스를 놓칠 뻔한다. 오늘은 ‘느긋’이 아니라 ‘느림보’였네. 그래도 08:27에 멀쩡하게 잘 탄다.
깡똥소매 한 벌을 챙기려다가 말았다. 속에 받친 깡똥소매옷은 나달나달하다. 겉에 걸친 긴소매를 벗어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챙겨야 했지 싶다. 겨울볕이 한창인 낮에 걸을 테고, 겨울은 탈거리(버스+전철)가 모두 후끈할 텐데. 속으로 끙소리를 내다가 책을 읽는다. 이어서 하루글을 쓴다. 쓰고서 쉬고, 또 쓰고서 쉰다. 차근차근 한 꼭지씩 쓰니 어느덧 서울에 들어선다. 한나절(4시간)이 참으로 휙 지나가는구나.
오늘은 맨발이니까 발바닥으로 길바닥을 차분히 느끼면서 다니자. 느림보 걸음새가 아닌, 느긋이 걸어다니는 하루라면 땀도 덜 나고 덜 더울 마실길일 테지. 걸으면 시원하고, 버스를 타면 덥다. 버스에서 내려 걷고서 전철을 타자니 또 덥다. 다시 밖으로 나와서 걸으니 상큼하다. 겨울은 좀 추워서 오들오들 떨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은 겨울에 너무 덥다. 서울은 여름에 너무 추웠는데. 2025.12.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