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출근길 지하철’ 너머로
2025년에 접어들자 비로소 시골인 전남 고흥에도 낮은버스(저상버스)가 하나 들어왔다. 이윽고 조금씩 늘고, 2025년 섣달 무렵에는 꽤 는다. 여러모로 보면 서울보다 시골에 일찌감치 낮은버스가 들어와야 맞으나, 시골에서 다리꽃(교통권)을 외치는 이는 없다시피 하다. 시골에서 다리꽃을 외친들, 듣거나 받아쓰는 글바치도 없고, 벼슬아치까지 없다.
시골에서는 90살 할머니도 삯을 내고서 난다. 어느덧 우리나라 모든 시골은 쉼날(공휴일)이면 시골버스를 거의 멈춘다. 손님이 적다면서 툭하면 갑자기 버스때를 바꾸는데, 군청에서도 안 알리고 버스일터도 안 알린다. 그냥 난데없이 바꾼다. 시골 벼슬아치(군청 공무원·기초의원·군수·국회의원) 가운데 시골버스를 타고서 일하러 다니는 이는 1/100은커녕 1/1000조차 안 된다고 느낀다.
‘출근길 지하철’은 틀림없이 뜻깊기는 하지만, 시골에서 아이하고 지내는 여느 사람은 ‘다리꽃(이동권)’은커녕 ‘삶꽃(기본생활권)’조차 없다고 할 만하다. 서울이나 큰고장에는 그나마 아기수레를 밀 만한 길이 조금 있지만, 시골에는 어디에서도 아기수레를 밀 수 없다. 아기수레를 밀 수 없을 뿐 아니라, 시골길은 쇠(자가용)가 그야말로 센바람을 일으키면서 마구잡이로 날뛴다.
서울과 큰고장을 씩씩하게 떠나서 시골에서 자리잡으려고 하는 젊은이는 하나같이 죽을맛이다. 일부러 쇠(자동차)를 건사하지 않으면서 걸으려고 하는 젊은엄마와 젊은아빠는 하루하루 고달프고 지친다. 아기를 사랑하며 포대기로 안고 업는 젊은어버이는 고되고 힘겹다. 이리하여 시골에서 젊은어버이 누구나 쇠를 장만하고야 만다. 두다리로 푸르게 살림하려는 뜻을 거의 모두 접고 만다.
이제는 길을 제대로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출근길 지하철 이동권’을 넘어서 ‘대중교통 기본생활권’이라는 틀로 이야기를 넓혀가야 할 때를 한참 지나도 너무 많이 지났다. 새해이든 이담해이든, 서울에서건 시골에서건 젊은어버이가 아기를 포대기로 안고서 걸어다닐 수 있기를 빈다. 2026년에 새로 뽑힐 벼슬아치(군수)는 부디 이 대목 좀 쳐다보기를 빈다. 2025.12.2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