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2.23. 잔재주 없이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말을 다루는 길이라면 잔재주를 부릴 까닭이 없습니다. 글을 여미는 길이라면 잔솜씨를 안 부립니다. 큰재주나 큰솜씨도 안 쓰고, 그저 재주나 솜씨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기교·기교적’이라는 일본말씨를 새삼스레 가다듬으면서 ‘재주·솜씨’라는 두 낱말을 다시 헤아립니다. ‘재주’란 ‘재다·자랑’으로 기우는 결이면서 ‘재(잿더미 + 잿길)’를 가리킬 뿐 아니라, ‘잘다·잔나비’ 같은 결로 잇습니다. 타고나기를 잘하기에 ‘재주’입니다. ‘솜씨’는 ‘손씨’가 밑말인 터라, 손수 애쓰고 땀빼어 갈고닦은 바를 가리켜요. 타고나지 않더라도 스스로 힘낸 결이 ‘솜씨’입니다.


  말글을 다루는 길은 왜 ‘재주·솜씨’를 다 멀리할 노릇일까요? 타고난 말글을 부릴 적에는 자꾸자꾸 잘난척으로 가느라, 막상 말글에 무엇을 담는가 하는 이야기하고 등집니다. 갈고닦은 말글을 펴려 할 적에는 자꾸자꾸 겉치레로 가느라, 정작 말글을 어떤 씨앗과 열매로 꽃피우려 하는가 하는 이야기하고 등돌려요.


  띄어쓰기나 맞춤길은 살펴도 되지만, 몰라도 되고, 다 틀려도 됩니다. 이야기가 없는 채 멋을 부릴 뿐 아니라 띄어쓰기와 맞춤길이 반듯한들, 들을 만한 말이 아니고 읽을 만한 글이 아니에요. 책을 쓰거나 읽고 싶다면, 글재주와 글솜씨를 몽땅 걷어치워야 합니다. 어떤 글재주나 글솜씨도 안 배워야 합니다. 글을 마치고서 글손질(퇴고)은 끝없이 하되, ‘갈고닦’는다든지 ‘벼리’려고 하지는 않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삶을 어떻게 짓는지 풀어내려는 길을 바라보면 되어요.


  일본스런 한자말 ‘가망·가능·가능성’과 ‘탄로’를 다시 가다듬느라 이틀을 썼습니다. ‘고산식물·한랭식물·자생식물’ 같은 일본스런 말씨를 추스르려고 여러 해를 보냅니다. 곧 다 마무리를 할 텐데,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집안일을 하다가 쉬엄쉬엄 가다듬고, 저잣마실을 다녀오면서 곰곰이 되새깁니다. 새해 2026년에는 부산에서 ‘낱모(낱말읽기 모임)’라는 자리를 꾸리려고 합니다. 부산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낱모’를 꾸릴 수 있습니다. 수수하고 흔하고 쉬운 말씨로 마음과 삶을 함께 배우고 익히려는 이웃님이 있다면, 어디에서라도 낱모를 열 수 있어요.


  우리는 잔재주와 큰재주와 ‘그냥재주’가 다 없어도 됩니다. 잔솜씨와 큰솜씨와 ‘그냥솜씨’마저 없어도 됩니다. 이 삶을 바라보는 눈을 뜨면 됩니다. 삶을 가꾸는 살림살이를 돌보면 됩니다. 삶을 가꾸는 살림살이를 돌보면서 사랑을 가만히 지펴서 즐겁게 씨앗 한 톨로 심으면 됩니다. 모든 말은 이미 빛씨앗이기에, 수수하고 흔하고 쉬운 말 한 마디를 고스란히 글로 옮기면 언제나 글씨가 반짝반짝합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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