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한겨울 맨발
내 발은 버선을 반기지 않는다고 느낀다. 더구나 고무신을 꿰고서 걷자면 아무리 목긴버선이어도 발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읍내 나래터에 나오는 길에 자꾸 흘러내리는 버선을 벗는다. 긴소매 웃옷도 벗는다. 가볍게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 하나를 다 읽고서 다음 책을 쥔다.
덜컹덜컹 흔들흔들 춤추는 버스를 타면 노래를 쓰고 하루글을 적는다. 버스글쓰기는 멀미를 싹 잊는 놀라운 빛가루 같다. 버스읽기나 버스쓰기야말로 멀미나지 않느냐고 묻는 분이 많지만, 멀미가 날 적에 읽고 쓰는 삶에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새 몸마음 모두 가라앉는다. 버스·자동차를 타면 멀미가 나는 까닭은 여럿일 텐데, 먼저 ‘기름·플라스틱·화학약품’이 어우러진 터라 코막히고 귀막히고 숨막힌다. 둘째, ‘숨막힌다’는 마음을 내내 품느라 숨길을 틀 마음으로 넘어서지 못 한다. 멀미나는 버스·자동차를 탈 적에 미닫이를 열고서 바깥바람을 쐬면, 서울 한복판이나 굴길(터널)이라 하더라도 멀미가 가신다. 첫째로, ‘숨막히는 기름·플라스틱·화학약품’을 바람으로 날리니 멀미가 가신다. 둘째로 ‘바깥바람’을 마음에 품는 사이에 ‘멀미나는 쇳덩이’를 까맣게 잊는다.
쇳덩이에 몸을 안 싣고서 들숲메바다가 베푸는 바람을 햇볕하고 나란히 받는 길이 가장 즐겁다. 논일밭일을 하는 시골지기는 언제나 그저 스스로 튼튼할 만하다. 그렇지만 풀죽임물(농약)에 죽음거름(화학비료)에 죽음켜(비닐)를 써대느라 정작 푸른일을 하면서도 몸을 갉는다.
한겨울이더라도 굳이 긴옷이나 두틈옷을 둘러야 하지 않다. 바람을 쐬고 겨울볕을 쬘 만한 차림이 가장 낫다. 살짝 춥다면 더 걸으면 되고, 달리거나 뛰면 된다. 짐을 질끈 메고서 걸으면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는다. 등짐차림으로 걷는다면 따로 ‘운동’을 할일이 없다. 손빨래를 하고 손걸레질을 하고 손설거지를 하면, 아무런 ‘운동’을 따로 안 할 만하다.
우리는 쇳덩이(자동차)에 몸을 싣느라 몸을 무너뜨린다. 쇳덩이를 아예 안 타는 삶이 가장 빛난다. 쇳덩이를 탄다면, 그만큼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느끼면서 손바닥으로 집안일을 하면 된다. 쇳덩이를 몰거나 타면서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드문드문 있을 테지만 너무 적다. 쇳덩이를 타느라 그림(유튜브)에 얽매인다. 이제는 쇳덩이에서 내려도 그림(유튜브)에 붙들린다.
튼튼몸이나 힘살을 바란다면 집안일을 하면 된다. 걷고 또 걸으면 되고, 걸으면서 읽으면 즐겁다. 버스나 전철을 기다릴 적에는 책을 읽어도 느긋하다. 읽고 쓰며 다니면 “오래 기다려도 어느새 버스랑 전철이 들어온”다. 읽고 쓰면서 거닐면, “둘레가 시끄럽건 말건 스스로 마음을 마음닦기를 하는” 셈이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마음닦기인 셈이요, 마음살림인 길이며, 마음밝힘이라고 느낀다.
책이란 늘 빛꾸러미이다. 어설픈 책이건 아름다운 책이건 새길을 반짝반짝 잇는 실 같다. 글이란 언제나 노래잔치이다. 누구나 스스르 이 삶을 담으면서 저마다 다르게 멧새랑 나란히 재잘재잘 가락꽃을 짓는다. 손에 쥐는 책 한 자락으로 숨을 돌린다. 손에 쥐는 붓 한 자루로 숨을 살린다. 읽으면서 깨어나고, 지으면서 피어난다. 읽는 사이에 눈을 뜨고, 쓰는 동안에 망울을 맺는다.
여름바람은 후끈해서 싱그럽다. 겨울바람은 꽁꽁 얼려서 산뜻하다. 한겨울 쑥부쟁이 한 송이는 한 달 내내 꽃빛을 베푼다. 아침저녁으로 풀꽃을 쓰다듬는다. 나무 한 그루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우람하다. 언제나 마주보고 올려다보고 바라보다가 다가서서 줄기를 폭 안는다. 2025.12.1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