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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자살하는 나라 ㅣ 김달 단편집 1
김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2.22.
까칠읽기 110
《여자가 자살하는 나라》
김달
문학동네
2025.4.4.
사랑이라는 마음이라면 싸우지 않습니다. 사랑시늉이나 사랑흉내를 하기에 허울을 스스로 쓰면서 싸웁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을 스스로 지피지 않기에 온누리를 품고 푸는 푸근한 품을 잃어요. 푸르게 품는 품을 스스로 잃으니 어지럽게 헤매다가 사납게 할퀴는 손끝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시골을 깡그리 잊을 만큼 들숲메바다를 등진 서울살이”입니다. 서울시가 아닌 다른 큰고장·작은고장에서 살아가는 하루도 “시골을 낮잡는 얼거리”예요. 이런 마음이 바탕으로 고스란히 자리잡으니 ‘촌스럽다’ 같은 사납말을 그냥 쓰고, ‘도시적·세련된’ 같은 겉치레말도 그냥 씁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 ‘아무나’ 글을 못 배우고 못 읽고, 책은 더더구나 손에 쥘 수 없게 마련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배우고 읽고 쓸 뿐 아니라, 책을 장만하거나 쓰는 일까지 몹시 쉬워요. 그런데 ‘저마다’ 글을 쓰거나 읽거나 책을 내거나 읽을 수 있는 놀라운 삶을 맞이했지만, 막상 ‘스스로’ 배우려고 챙겨서 읽는다든지, ‘스스럼없이’ 나누려고 거듭거듭 익혀서 글·책을 쓰는 사람은 오히려 줄어드나 싶기도 합니다.
《여자가 자살하는 나라》를 읽었다. 그림님은 ‘거칠게(과격)’ 안 그렸다고 밝히는데, ‘거칠다(과격)’기보다는 ‘생각않는(무데뽀)’라 해야 맞다고 느낀다. 생각하며 그렸다기보다, 그냥그냥 붓을 휘둘렀다. 우리는 예부터 미운놈한테 떡 하나를 더 주며 함께살기를 이루었는데, 《여자가 자살하는 나라》 같은 책은 미운놈이니까 흠씬 두들겨팰 뿐 아니라, 붓으로 확확 죽이는 얼거리라고 할 수 있다.
순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곳이라면, 그 별은 이미 끝장났습니다. 돌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곳이어도, 이 별은 벌써 막장입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서, 서로서로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별일 때라야, 비로소 별빛이 흐릅니다. 끝장과 막장을 더하면 싸움판이고 죽음밭이다. 칼부림판이요, 아무렇지 않고 찌르고 베고 쑤셔서 없애는 얼뜬짓이다.
남(사회·정부)이 나를 잘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쁘지 않지만, 남(기존 출판사)이 우리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름난 숱한 펴냄터에서 쏟아지는 책이 오히려 ‘속빈강정’이나 ‘텅빈수레’이기 일쑤이다. 언제나 즐겁게 이 하루를 아로새기면서 새길과 새뜻을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 칼부림으로는 하나도 못 낳는다. 실컷 밟고 죽인들 응어리를 못 푼다. 그저 돌려받을 뿐이다. 다른 붓질이야말로 사납다고 둘러댄들 부질없다. 멍한 눈망울인 사람을 그려대는 붓으로는 스스로 할퀴기만 하겠지.
ㅍㄹㄴ
헬레나는 식민지에 도착했다. 식민지 여자들은 전부 추하고 웃기게 생겼다. 헬레나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47쪽)
아버지와 막냇동생의 시체에는 파리가 새카맣게 앉아 있었다. 다른 동생들은 아마 도망간 것 같았다. 코토하는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교토하는 집밖으로 나왔다. (82쪽)
심지어 여자가 남자를 잔인하게 살해해도, 죄를 추궁받지 않는다. 남자 따위야 우글우글하기 때문이다. “제 안의 파괴 충동에 그만.” “그러실 수 있죠.” “아, 매일매일이 즐거워.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고. 갖지 못할 것도 없지.” (152쪽)
제 만화는 사실 별로 과격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끄는 웹툰이나 영화들을 봐도 제 만화보다 훨씬 폭력적인 게 많습니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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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자살하는 나라》(김달, 문학동네, 2025)
엄마의 미모를 물려받아
→ 엄마 몸매를 물려받아
→ 엄마처럼 잘빠져서
→ 엄마처럼 고와
→ 엄마처럼 매끈해서
8쪽
열여섯 살이 되었다. 이팔청춘
→ 열여섯 살이 된다. 꽃망울
→ 열여섯 살이다. 푸른나이
9쪽
심각한 우울증에 약간의 조현증세까지 생긴 공주는
→ 눈물꽃에 미치기까지 한 아이는
→ 멍울꽃에 넋나가기까지 한 아이는
22쪽
말더듬증이 심해서
→ 말을 몹시 더듬어
→ 말더듬이라서
31쪽
태양 아래 얼굴을 마음껏 드러내고 다녔다
→ 햇빛에 얼굴을 마음껏 드러내고 다녔다
→ 얼굴을 마음껏 드러내고 다녔다
47쪽
그는 일 년 만에 풍토병으로 죽었다
→ 그는 한 해 만에 흙앓이로 죽었다
→ 그는 한 해 만에 텃앓이로 죽었다
48쪽
사십 일의 밤과 낮 동안 사막을 홀로 걸었구나
→ 마흔 밤낮을 홀로 모래벌을 걸었구나
→ 모래밭을 밤낮으로 마흔 날 홀로 걸었구나
6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