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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교시에 너를 기다려 ㅣ 보름달문고 94
성욱현 지음, 모루토리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12.20.
푸른책시렁 189
《6교시에 너를 기다려》
성욱현 글
모루토리 그림
문학동네
2024.11.12.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도 임금·벼슬아치는 곁배움(과외)을 했습니다. 똑똑한 사람을 곁에 붙여서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똑똑이는 임금이나 벼슬아치 곁에 머물면서 ‘한 사람’만 가르치며 돈을 벌고 살림을 꾸렸어요. 그런데 온나라를 거느리려면 이런 얼거리로는 심부름꾼이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우리로 치면 ‘서원’이라는 곳은 ‘임금을 모시는 작은벼슬꾼’을 키우는 데입니다.
일본은 총칼로 옆나라를 집어삼키려 하면서 ‘국민학교’를 세웁니다. 제나라뿐 아니라 옆나라에서 벼슬꾼(공무원) 노릇을 할 심부름꾼이 잔뜩 있어야 했거든요. “사람들을 널리 가르칠 뜻”이 아니라, “나라를 떠받들 심부름꾼을 키울 뜻”인 국민학교였고, 중등학교·대학교도 매한가지입니다.
나라일을 맡는 벼슬꾼 자리에 서면 늘그막까지 이럭저럭 배부르게 지낼 만합니다. 뒷돈을 쏠쏠히 챙기면서 고을과 마을에서 으르렁거릴 수 있어요. 이런 얼개이다 보니 저절로 배움수렁(입시지옥)이 불거집니다. 아무튼 배움터를 거쳐서 벼슬을 쥐면 나랏님(대통령)이 돈·이름·힘을 떡고물로 나눠주거든요.
우리나라 배움터는 이름은 배움터(학교)이되,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배우는 곳하고 멉니다. 거의 모두라 할 배움터는 “서울에서 벼슬자리나 돈자리나 힘자리나 이름자리를 얻으려고 싸우는 수렁”입니다. 배우는 터전이라면 좁은칸에 욱여넣지 않아요. 배우는 터전이라면 똑같은 나이인 또래를 몰아놓지 않습니다. 배우는 터전이라면 똑같은 밥(급식)에 똑같은 책(교과서)에 똑같은 짬(수업)으로 옭아매지 않습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배움터라는 데에서 괴롭고 지치고 힘들 뿐 아니라, 동무를 사귀기 어렵습니다.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또래는 잔뜩 있지만, 이미 배움판은 ‘벼슬사움판’인 터라, 마음을 나누는 동무가 아닌 “밟고 밀쳐낼 놈”으로 여길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6교시에 너를 기다려》는 이런 늪이자 수렁이자 굴레인 배움터에서 여러 어린이와 푸름이가 이럭저럭 뜻을 맞추어 가까스로 마음을 풀거나 응어리를 털기도 한다는 몇 가지 줄거리를 짚는 듯싶습니다. 이런 줄거리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고갱이하고 한참 멀어요. 어떻게든 버티고, 어떻게든 종이(졸업장)를 따내야 하고, 어떻게든 ‘학교에 있으면’ 다 된다는 틀에서 맴돕니다.
《6교시에 너를 기다려》뿐 아니라 요즘 나오는 거의 모두라 할 글(어린이문학·청소년문학)이 아주 똑같다 싶은 틀입니다. ‘학교 밖’이나 ‘학교 둘레’는 아주 못 보거나 안 봅니다. ‘집과 학교 사이’가 아주 없어요. 아이들은 ‘학교에 얽매여야 하는 종살이’가 아닐 테지만, ‘철드는 눈’이 아니라 ‘학교에서 씨름하는 올가미’에서 맴돌기만 합니다.
이제라도 어린이와 푸름이를 굴레에서 놓아주는 이야기를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참말로 배우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배움길’은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스스로 짓는 줄 알려주어야지 싶습니다. 툭탁거리거나 노닥거리는 줄거리에서 맴도는 글로는 “하루빨리 나이들고 싶어!” 같은 마음으로만 갈 뿐입니다. 아이는 ‘나이든 사람’이 아니라 ‘어른(철든 사람)’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요.
ㅍㄹㄴ
“날아간다!” 채린이가 소리쳤어. 이러다가 정말 하늘로 날아오를지도 몰라. 하지만 채린이는 커튼만큼 곤충만큼 상상하는 걸 좋아하잖아. 수십 마리의 낙서 잠자리와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채린이는 상상했어. 하늘로 날아오른다면 가장 먼저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날아다니는 것들은 하늘에서 뭘 하며 놀까? (16쪽)
아이들이 떠드는 목소리에 맞춰서 나무는 살랑살랑 나뭇가지를 흔들었고, 몸통을 부르르, 부르르 떨었어. 나무에 손을 올리고 있던 지후는 알 수 있었지. 지후는 눈을 반짝이며 모두의 앞에 서서 양손을 번쩍 들었어. (36쪽)
선생님이 잠깐 교실을 비워야 하는 일이 생겼어. “금방 올게요. 잠시만 조용히 기다려요.” 반장이 물었다. “누가 말썽 피우면요?” 선생님은 곰곰 생각하다 말했어. “반장이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알려 주세요.”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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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교시에 너를 기다려》(성욱현, 문학동네, 2024)
마흔 장의 날개를 달고서
→ 마흔 날개를 달고서
→ 날개를 마흔 자락 달고서
8쪽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선생님께 들키곤 했어
→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샘님한테 들키곤 했어
10쪽
다음 주에 뒷산으로 현장학습을 가
→ 이레 뒤에 뒷메로 바깥놀이를 가
→ 이레 지나 뒷메로 나들이를 가
10쪽
특히 여러 장의 날개를 가진 곤충들을 말야
→ 그리고 날개가 여럿인 벌레를 말야
10쪽
여러 장의 날개를 가진 곤충들은 멋지게 비행해
→ 날개가 여럿인 벌레는 멋지게 날아
10쪽
심지어 후진 비행까지 하며 원하는 데로 날아갈
→ 더구나 뒷날이까지 하며 바라는 데로 날아갈
→ 게다가 뒤로까지 마음대로 날아갈
10쪽
고민하기 시작했어
→ 걱정해
→ 걱정스러워
12쪽
누군가 지팡이를 교문 가운데 꽂아 둔 것만 같았어
→ 누가 지팡이를 길목 가운데 꽂아 둔 듯했어
→ 누가 지팡이를 들턱 가운데 꽂아 둔 듯싶어
24쪽
복도 아래를 가리키며
→ 골마루를 가리키며
45쪽
거대 지렁이와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 큰지렁이와 나눈 말 때문일까
→ 큰지렁이와 이야기한 때문일까
55쪽
휴! 이제 네 차례야
→ 후유! 이제 너야
60쪽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 자리에 올려놓으며
61쪽
옆자리 친구와 항상 함께 있고 싶어졌어
→ 옆자리 아이와 늘 함께 있고 싶어
→ 옆동무와 언제나 함께하고 싶어
→ 옆아이랑 내내 함께이기를 바라
62쪽
무엇이든 끼적거리기 마련이니까
→ 무엇이든 끼적거리게 마련이니까
→ 무엇이든 끼적거리니까
93쪽
모두의 주목을 받는 건 부담스러우니까
→ 모두 쳐다보면 버거우니까
→ 모두 바라보면 힘드니까
9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