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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길
김철순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평점 :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12.18.
그림책시렁 1701
《사과의 길》
김철순 글
김세현 그림
문학동네
2025.12.8.
우리한테는 ‘사과(沙果)’라는 이름인 나무열매는 따로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 자란 나무열매라면 ‘능금’하고 ‘멋’입니다. 한자로 ‘임금(林檎)’이나 ‘내(柰)’로 적습니다만, 지난날에는 우리글씨를 안 쓴 터라, 소리만 땄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먼저 ‘능금’은 오래도록 ‘닝금·님금’이었고, ‘임금’으로도 나란히 소리를 냈어요. 바로 ‘우두머리’인 ‘임금(王)’을 가리키는 소리하고 같습니다. 이 땅에 임금님이 나온 지는 그리 안 길어요. ‘능금·임금’이 훨씬 일찍부터 있던 우리말입니다. ‘멋’이란 ‘멋나다·멋있다’와 맞물리는 오래말이요, ‘머리·머드러기’와 ‘맏·맡·마루’와 ‘미르·미루’로 잇는 말씨입니다. 여러모로 보면 ‘능금·멋’은 거의 같되 살짝 다른 말씨요, 지난날에는 능금과 멋이 살짝 다르게 맺는 열매였다지요. ‘니’하고 ‘이’는 소리가 넘나들면서 나란한 말밑입니다. ‘님·임’은 같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일다·이루다·일·입·입다·잎·잇’ 같은 낱말을 돌아보아도 ‘임(님) + 금’이란, 열매 가운데 첫손을 꼽는 아름답고 놀라운 결이라는 속뜻이요, ‘멋’ 또한 머리와 머드러기와 맏과 미르를 나란히 나타내듯 으뜸간다고 여길 열매라는 밑뜻입니다. 《사과의 길》은 얼핏 능금꽃과 능금잎과 능금나무를 귀여우며 눈부시게 그리려고 했구나 싶으면서도, 막상 이 열매가 이 땅뿐 아니라 푸른별에서 얼마나 오래도록 반짝였는지까지 들여다보지는 못 하는 채 맴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사과의 길”이라는 일본말씨가 아닌 “능금길”이나 “멋길”이라는 우리말씨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가볍게 말재주나 붓재주를 부려도 안 나쁘지만, 어린이 곁에 놓을 능금빛이나 멋빛이라면, 오래오래 잇고 흐르며 돌본 푸른숲과 같은 말빛과 붓빛을 살릴 노릇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