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묵은절



  12월 11∼14일, 나흘에 걸친 책마당에 함께 나가서 일손을 돕는다. 12월 15일은 이모저모 짐을 꾸리고 치우는 일까지 도운 다음에 시외버스를 탄다. 올해에 길에 들인 삯이 꽤 될 듯싶다. 길에서 지내다시피 하느라, 걸으면서 읽고 쓰고,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는 내내 다시 읽고 썼다. 숱하게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새로짓고 배운 살림길로 나란히 깊어갔지 싶다. 애쓴 나무판(‘2025년 문학상주작가’란 글씨를 새긴 판)을 부산에서 고흥으로 옮긴다. 이제는 고흥 보금숲에 차분히 깃들어 쉬면서 새해 새길을 짓자.


  함께하는 하루란 무엇인지 더 돌아보는 닷새마실이다. 함께쓰기·함께읽기·함께생각·함께노래를 여덟 달 동안 얼추 쉰 가지 즈음 일구었으니, 여덟 뺨이 자랐다고도, 여든 뺨쯤 자랐다고도, 서로서로 나란히 여덟빛을 온빛으로 일구었다고 느낀다.


  이제 이 시외버스 4시간 길을 달려서 고흥으로 돌아가며 곧 곯아떨어질 텐데, 나는 밤에 죽으면서 잠들어 꿈을 그린다. 밤에 꼬박꼬박 죽으며 잠들어야 비로소 차분히 제대로 새길을 바라본다고 느낀다. 이슬이 돋는 새벽에 가만히 눈뜨고는 되살아나니, 이때에 새몸에 새빛이 돌아서 하루살림을 짓는다고 본다. 날마다 죽기에 날마다 태어나는 삶이라서, 모든 날이 새날(생일)이다. 우리는 한 해 내내 새날을 맞이하고, 함께 기뻐하고, 같이 노래하고, 서로 반갑다.


  아이들하고 곁님한테도 얘기한다. 아니, 곁님이 나한테 말하기도 했고, 나는 어릴적부터 밤잠은 그저 죽음 같다고 느끼기는 해도 썩 깊이 돌아보거나 살피는 마음은 아니었다. 책벌레로서 새하루에는 또 어떤 새책이 나오는지 지켜보려는 마음에다가, 새책을 머잖아 손에 쥘 때가 있겠거니 여기며 쉰 해 남짓 살아왔다.


  섣달 이렛날에 태어난 고삭부리 작은아이는 날마다 골골대며 죽음괴 마찬가지인 낮을 보내다가 밤새 도깨비한테 시달리는 삶을 서른아홉 해 이었다. 서른아홉 해를 맞은 그해에 ‘도깨비 쫓기’를 익혔다. 그해에 처음으로 ‘파란숨쉬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코로도 입으로도 숨쉬기 어려운데다가 노상 도깨비가 둘레에서 춤추던 나날”을 떨친 그해 그날도 ‘난날(태어난날)’이고, 모든 아침도 한결같이 난날이다.


  하도 숨쉬기가 힘들어서 1초마다 죽고 싶던 마음으로 서른아홉 해를 보냈다가 털어낼 수 있었다. 처음 코와 입이 똟린 날, 저절로 눈물이 샘솟았지. “나는 살아도 되는구나” 하고 느끼던 마음을 날마다 밤낮으로 새로 곱씹는다. 너도 나도 우리도 즐겁게 살아가면 된다. 가시밭을 노래로 걷고, 꽃밭을 춤으로 걷고, 하늘밭을 날갯짓으로 걷고, 바다밭을 헤엄짓으로 걷는다.


  섣달이 깊어간다. 긴밤이 열흘 즈음 앞이다. 밤겨울이 막바지로 간다. 묵은절을 남긴다. 시외버스에서 잠들자. 까무룩 죽고서 깨어나면 순천 즈음이겠지. 순천 언저리에서 깨어나면 다시 읽고 쓰자. 2025.12.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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