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남과 나



  우리 옛말에 ‘남집살이’가 있다. ‘우리집’이 아닌 ‘남집’에 깃들어서 입에 풀바르는 삶을 나타낸다. 그러나 남집살이를 하든 ‘우리집살이(나집살이)’를 하든 대수롭지 않다. 마음이 대수로운걸. 우리집에 있더라도 마음이 딴데 있으면 언제나 흔들린다. 남집에 있지만 마음이 한결같이 ‘나·너·우리’로 고스란하면 늘 즐겁다.


  우리집 아이도 이웃집 아이도 나란히 아이라는 빛이다. 우리집 아이는 우리가 보금자리에서 돌아보는 숨빛이고, 이웃집 아이는 우리집 아이가 앞으로 마주할 이웃인 숨빛이다. 우리는 우리집 아이랑 이웃집 아이를 나란히 바라볼 수 있는 길을 걸으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차분히 배우는 ‘어깨동무’라는 오늘길을 걷는다고 느낀다. 비록 곧잘·자주·자꾸·또 바깥일을 하느라 집을 비우더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한마음·한빛·한넋·한꽃이라는 대목을 고이 품으면 넉넉하다.


  서로 나란히 사람이면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날갯짓인 줄 느끼고 받아들여서 눈을 새롭게 뜰 적에는 ‘나·너’이다. 서로 나란한 줄 등지고 등돌리고 고개돌리고 눈감을 적에는 ‘나·남’이다. 말끝 하나만 다르다. ‘남’은 이윽고 ‘놈’으로 바뀌지. ‘나·너’는 ‘님’으로 닿고. 그러니까 ‘나·너 = 우리 = 님’인 얼개이고, ‘나·남 = 밖 = 놈’인 얼거리이다.


  우리는 ‘남’을 쳐다보아야 할 까닭이 없다. 우리는 ‘나’부터 보면서 ‘너’를 알아볼 노릇이다. 이윽고 ‘우리’를 바라보고 받아안는, 바다 같으면서 바람을 담은 파란하늘과 파란별로 스스로 빛나기에 사람이자 사랑이다. 나하고 너를 바라보고 품을 적에는 푸른길인 숲사람이다. 나랑 너가 아닌, 나하고 남이라는 굴레로 금을 긋고 가르고 따지고 재고 싸우고 겨루고 다투느라 불씨가 번지고 불늪에 불바다에 불바람으로 치닫는 죽음짓이기 일쑤이다.


  누가 왜 말썽을 피우겠는가. 누가 어째서 핑계를 대겠는가. 누가 왜 자꾸 골치를 썩이거나 잘못을 일삼겠는가. ‘나·너 = 우리 = 님’이라는 길을 등돌리면서 잊고 잃으니 사납게 망탕으로 치닫는다. ‘나·남 = 밖 = 놈’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꿰차면서 담벼락을 쌓으니, 얼핏 길미나 돈자루를 쥐는 듯하더라도, 이들부터 스스로 망가지고 무너진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잘못했어.”하고 “고마워.”에다가 “사랑해.”라는 석 마디를 늘 스스럼없이 피워낸다. 이와 달리 온누리 숱한 ‘어른 아닌 꼰대’는 “잘못했다.”도 “고맙다.”도 “사랑한다.”도 거의 입밖으로 안 내거나 못 내는 쳇바퀴에 스스로 사로잡힌다. 아이들이 ‘빛말’ 석 마디를 읊을 수 있는 까닭을 들여다볼 노릇이다. 아이는 스스로 빛인 줄 아는 마음과 몸으로 태어났기에 빛말을 쓴다. 그렇지만 어린이집과 배움터에 길들고 갇히고 시달리면서 빛말을 차츰 잊는다. 오늘날 이 나라뿐 아니라 숱한 나라에서는 빛말을 빛나는 눈망울로 터뜨리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빛말을 빛나는 눈길로 여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날 수 있다.


  어느 길을 바라고 바라보려는지 헤아려야지 싶다. 우리부터, 나부터, 스스로, 몸소, 어떻게 하루길을 열려는 마음인지 살펴야지 싶다. ‘너’가 아닌 ‘남’을 보니까 쉽게 망가진다. ‘나’를 보면서 ‘너’를 마주보니 손을 내밀고 어깨를 겯고 나란히 거닐면서 숲바람을 쐬고 들꽃내음을 속삭이는 오늘을 누린다. 남한테 기대니 길든다. 너한테 맡기니 너나없이 즐겁다. 남한테 바라니 싫고 시시하고 심드렁하다가 시샘에 불씨가 번진다. 너하고 얘기하니 새롭게 잇고 읽고 일구면서 천천히 함께 이루는 말씨부터 심는다. 2025.12.1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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