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라이터 동냥



  버스나루는 담배 피우지 않을 곳이 된 지 오래이다. 얼추 스무 해쯤 된다. 누구한테는 고작 스무 해일 테지만, 새로 태어나서 자란 어린씨랑 푸른씨한테는 그저 마땅한 일이다. 서른 해쯤 앞서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에 재떨이가 있었고, 담배쟁이는 버스(시내버스·시외버스 모두)로 움직이다가 미닫이를 확 열고서 꽁초를 밖으로 휙휙 던지곤 했다. 이들이 함부로 던진 꽁초에 맞는 뚜벅이가 숱했다. 고작 서른 해밖에 안 지난, 또는 이제 서른 해나 껑충 지난, 아스라하거나 가까운 지난날 우리 민낯이다.


  전남 고흥에서 2011년부터 열다섯 해를 살며 돌아보면, 버스나루를 둘러싸고서 ‘금연시설’ 글씨가 서른 곳 즈음 붙어도 담배쟁이는 아예 아랑곳않는다. 늙은이도 군인도 젊은이도 똑같다. 시골내기도 서울내기도 마찬가지이더라. 사내도 가시내도 똑같다. 다들 ‘금연’ 글씨가 큼지막한 곳 코앞에서 담배를 태운다.


  오늘은 고흥버스나루에서 이른아침부터 담배랑 불(라이터)을 동냥하는 젊은이가 있다. 이이는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다가가서 굽신굽신하며 볘풀어 주십사 여쭈는데, 없다고 하는 사람마다 뒤돌아서며 궁시렁궁시렁 막말을 한다. 이 작은 시골자락 버스나루에서 이 젊은이가 하는 꼬라지를 둘레에서 다 지켜보는데, 담배동냥이 될까? 저런 꼬라지라면 ‘나한테 담배나 불이 있어’도 안 빌려줘야지 하고 마음먹지 않겠나. 없다고 손사래치는 사람한테 말 걸어서 잘못했다고, 너그러이 봐주십사 하면서 조용히 지나가면, 이 시골자락쯤 되면 어떤 할매나 할배는 이 젊은이한테 돈을 쥐어주고서, 얼른 가서 사다 피우라고 할 만하다.


  그나저나 담배가 마려워서 이른아침에 버스나루까지 나온다면, 이 바지런한 매무새로 일하면 된다. 일하고서 가게에서 사다가 이녁 집에서 조용히 피우면 된다. 피우고픈 담배를 실컷 피울 수 있을 만큼 신나게 일하면 된다. 책벌레는 책을 실컷 사읽으려고 신나게 일한다. 아이곁에서 보금숲을 그리는 사람은 푸르게 우거질 우리집을 그리면서 기쁘게 일한다.


  새로 태어난 사람은 새로 배우는 길이다. 태어난 지 오래라고 하더라도 늘 새로 배우는 사람이 있고, 배움터(초·중·고·대)를 다니면서도 안 배우려 하는 사람이 있다. 대학교에 가며 그만 배운다든지, 대학교를 마치며 굳이 안 배우는 사람이 있다. 나이들면 눈이 어둡다는 핑계로 안 배우는 채 유튜브만 들여다보는 사람(이를테면 이해찬)도 있는데, 어느 나이에 이르든 아이곁을 지키면서 스스럼없이 배우는 사람이 있다.


  어제는 큰아이하고 바깥길을 다녀오며 시외버스에서 나란히 노래 한 자락을 썼다. 오늘은 혼자 바깥길을 나서며 시골버스에서 천천히 노래를 쓴다. 모두 노래이다. 모두 노래로 피어난다. 모두 노래로 어울린다. 여름바람도 겨울바람도 노래이다. 봄볕과 가을별도 노래이다. 걷는 길과 짊어지는 길 모두 노래이다. 동냥도 베풂손도 노래이다. 책읽기도 책쓰기도 노래이다. ‘책 안 읽기’랑 ‘글 안 쓰기’도, 아무렴 노래이다. 2025.12.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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