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2.11. 다행 변명 고통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여태껏 어느 하루도 ‘괴롭던’ 적이 없다고 돌아봅니다. 남이 괴롭힌다고 해서 제가 괴로울 까닭이 없고, 누가 짓밟거나 두들겨패거나 억누른들 제가 버겁거나 힘들 일이 없습니다. 어릴적에 문득 스스로 배운 바가 있는데, ‘몸벗기(유체이탈)’가 있어요. 배움터에 들지 않던 일곱 살까지는 마을에서 누구나 허물없이 어울리면서 뛰어놀던 무렵인데, 배움터에 들기 무섭게 주먹과 몽둥이와 발길질과 따귀가 춤추더군요.
이제는 예전처럼 배움터에서 아이를 윽박지르고 때리고 밟는 멍청짓은 없을 듯하되, 모든 곳에서 다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주먹질은 안 해도 돈질이나 이름질로 들볶기도 하고, 뒷구멍에서 손가락질로 킬킬거리는 무리도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때에 몸벗기를 하면 아무렇지 않아요. 로알드 달 님이 쓴 《마틸다》에서는 눈짓으로 바꾸는 길을 들려주는데, 저는 누가 저를 때릴 적마다 속으로 ‘딸깍!’ 하고 누름쇠를 건드리면서 “이 몸은 내가 아니야. 나는 몸을 입은 넋이야.” 하고 혼잣말을 되뇌면서 하얀빛이 몸밖으로 붕 나옵니다. 하늘에서 날며 밑을 바라보지요. 넋이 입은 옷인 몸뚱이한테 드잡이를 하는 무리를 물끄러미 봅니다. 그들은 ‘몸에서 나온 하얀빛’을 못 보기에 제 몸뚱이만 갖고놉니다.
일본스럽다고 해야 할 한자말 ‘다행·변명·고통’이 있습니다. 이럭저럭 손질해 놓기는 했되, 크게 손봐야겠다고만 여기고서 미루고 미룬 끝에 어제오늘 새삼스레 확 가다듬습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섞어써야 “다룰 수 있는 말이 더 많다”고 잘못 여기는 분이 참 많아요. 우리는 “우리말을 하면서 이웃말을 익히면 넉넉”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지어서 널리 쓸 만한 한자말은 하나조차 없습니다. 중국한자말은 중국말이고, 일본한자말은 일본말이거든요. ‘한국한자말’은 우리말이 아닌 ‘꼰대말(남성가부장권력 지식인 전문용어)’입니다. 굳이 꼰대말을 붙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고 헤아리는 살림말을 쓰면 되어요.
아플 수 있고 가슴아플 수 있습니다. 앓을 수 있고 마음앓이를 할 수 있습니다. 멍들 수 있고 멍울이 맺힐 수 있습니다. 눈물 한 방울은 눈물꽃과 눈물바람과 눈물비와 눈물빛과 눈물구름과 눈물앓이로 번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 스스로 즐겁게 펴기에 “다룰 수 있는 말이 가없이 넘실거립”니다. 이러면서 영어하고 한자말을 ‘이웃말(외국말)’로 똑똑히 느껴야, 둘 사이를 제대로 헤아리고 짚으면서 우리말과 바깥말을 알맞게 다루게 마련입니다.
날이 갈수록 어린이도 푸름이도 그냥그냥 어른이라 하는 분도 ‘말밭’이 그야말로 허거픕니다. 언제나 ‘나’부터 제대로 보아야 ‘너’를 알아보면서 ‘우리’를 아우르는 아름드리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으로 나아가는데, ‘나’라고 하는 ‘우리말’부터 팽개치거나 제대로 느긋이 익힐 틈이 없는 이 나라예요. 지난날 어린이는 열세 살까지 우리말만 익혔습니다. 이러고서 열네 살부터 영어하고 한자를 바깥말로 따로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 낱말과 말소리와 말결과 말뜻과 말씨를 찬찬히 몸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나날을 실컷 누려야, 이다음에 ‘온누리 여러 이웃’하고 사귀고 어울리고 만나면서, 이 푸른별에서 크고 넉넉히 아름숲인 나무빛으로 아우르는 말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사람들이 안 깨어나기를 바라기에 고작 서너 살 어린이한테 영어랑 한자말을 마구 욱여넣는 이 나라입니다. 삶자리에서 살림빛으로 나눌 우리말을 느긋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굳이 서울에 목을 매달지 않아요. 억지로 외워야 하는 영어하고 한자말을 ‘열세 살’도 안 되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하도록 시달려야 하는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는 글읽눈(문해력)이 사라지고 맙니다.
꾸밈머리(AI)를 키우는 길에 돈을 허벌나게 쏟아붓는 나라 얼개예요. 꾸밈머리를 내세우면서 ‘내 머리’도 ‘네 머리’도 그냥그냥 ‘돌머리’로 길들이고 죽이려는 속내라고 느낍니다. 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면 꾸밈머리를 끊을 노릇입니다. 이곳에서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을 펴는 새길을 이루고 싶다면 ‘나너우리’라는 결을 읽는 가장 수수하고 쉬운 우리말부터 다시 배울 일입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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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