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증언 낮은산 키큰나무 24
김중미 지음 / 낮은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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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2.10.

다듬읽기 274


《너를 위한 증언》

 김중미

 낮은산

 2022.4.5.



  삶을 사랑으로 짓는 손길이기에 살림을 이룹니다. 하루하루 맞이하지만 사랑이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휩쓸리며 심부름에 얽매이니 살림과 등질 뿐 아니라 사랑을 모릅니다. 온누리 어디에서나 삶·살림·사랑을 품는 사람으로 서는 집이 있지만, 안타깝고 슬프게 삶·살림·사랑이 아니라 돈·힘·이름에 이끌리는 끄나풀과 놈팡이도 있습니다. 《너를 위한 증언》은 살림지기·사랑지기가 아닌 놈팡이·끄나풀이 휘두르는 주먹에 울고 아프고 죽은 가시내한테 맺힌 응어리하고 눈물을 담는 줄거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멍청한 주먹을 ‘남성가부장권력’이라고 일컫습니다. 넋을 잃은, 얼을 잊은, 빛을 등진, 씨앗을 팽개친 무리가 ‘고약한 꼰대(남성가부장권력)’일 텐데, 바로 모든 임금(왕·대통령·권력자)이 고약한 꼰대입니다.


  얼핏 보면 임금이란 놈팡이는 하나 아니냐고 여길 텐데, 피를 잇는 임금은 수두룩하고, 임금이 되려는 사내(왕자)도 수두룩합니다. 임금을 모시는 벼슬아치는 하나같이 사내(신하·사대부·귀족)이면서 수두룩합니다. 임금과 벼슬아치는 그들 돈·힘·이름을 움켜쥐려고 사람들을 억누르고 짓밟아서 싸울아비(군인)로 데려가고, 나라 곳곳에 나리(양반·지식인·공무원)를 두는데, 싸울아비하고 나리도 줄줄이 사내입니다. 몇몇 사내하고 얽힌 굴레가 아닌, 고린틀(봉건사회)이 고스란히 굴레입니다.


  굴레에 길들기에 돈벌이는 하되 살림은 안 짓거나 못 짓습니다. 굴레를 꿰는 허수아비에 끄나풀로 떡고물을 얻는 자리를 누리려고 하니, 사납짓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합니다. 이른바 ‘이씨 조선 500해’가 끝장났어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어도, ‘박·전·노·김 군사독재’를 끌어내렸어도, 왜 고약한 꼰대짓이 안 사라지는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사회·국가·정부)라고 하는 꼴이 그대로 고약한 꼰대틀이거든요.


  《너를 위한 증언》은 줄거리를 펴려는 뜻은 나쁘지 않다고 느끼지만, 고약한 꼰대틀이 서슬퍼런 얼거리를 썩 못 읽거나 안 읽는 듯합니다. ‘모든 아버지’도 ‘몇몇 아버지’도 아닌, ‘모든 사내’도 ‘몇몇 사내’도 아닌 실타래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살림이고 사랑이고 삶이고 사람인지 밝힐 때라야, 응어리를 달래고 눈물을 씻고 생채기를 토닥이면서 일어설 수 있어요. 옳은길(정의)이라는 목소리를 내기에 새길이나 새글을 이루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옳은길’이되, 이 목소리에 ‘삶·살림·사랑·사람’이 없이 ‘미움씨·불씨·싫음씨’로 채운다면, 더구나 글결이 온통 ‘일본말씨 + 옮김말씨(일제강점기 군국주의 말씨·번역체)’라면, 겉훑기로 헤매다가 그치게 마련입니다.


ㅍㄹㄴ


《너를 위한 증언》(김중미, 낮은산, 2022)


나는 가출도 해본 적이 없어 아무리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 나는 집나간 적이 없어 아무리 속쓰리고 불나는 일이 있어도

→ 나는 뛰쳐나간 적이 없어 아무리 쓰리고 싫은 일이 있어도

11쪽


저어새가 가족 단위로 사는데 그 가족이 불가피하게 깨지면 남은 생을 외톨이로 산다고

→ 저어새는 한집을 이루는데 누가 죽으면 남은 삶을 외톨이로 산다고

→ 저어새는 둥지를 짓는데 한쪽이 먼저 가면 남은 삶은 외톨이라고

16쪽


잘 자게 되면 나갈게

→ 잘 자면 나갈게

17쪽


자궁과 난소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 아기집과 알집을 크게 도려냈다

→ 아가집과 암씨집을 크게 잘라냈다

18쪽


하늘에 빛의 요술이 펼쳐진다

→ 하늘에 빛잔치가 열린다

→ 하늘에 빛이 반짝인다

→ 하늘이 빛꽃을 이룬다

19쪽


미투 얘기가 나오면

→ 같이 얘기가 나오면

→ 나도 얘기가 나오면

→ 함께 얘기가 나오면

23쪽


결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 결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 결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지만

→ 결이가 하는 말을 영 못 알아듣지만

36쪽


새들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떨까

→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떨까

→ 새처럼 하늘에서 땅을 보면 어떨까

40쪽


넌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넌 나란꽃을 어떻게 여겨?

→ 넌 무지개사랑을 어떻게 봐?

44쪽


너희 언니가 레즈비언이라서 가족들이 장례식에 안 갔다는 거야?

→ 너희 언니가 한꽃이라서 집에서 죽음길에 안 갔다고?

→ 너희 언니가 나란꽃이라서 집에서 보냄길에 안 갔다고?

45쪽


쇼윈도 부부만 있는 게 아니라 쇼윈도 가족도 있어

→ 눈가림 갓벗만 있지 않고 눈가림 집안도 있어

→ 꽃밭 사이만 있지 않고 꽃밭 집안도 있어

→ 겉보기 단짝만 있지 않고 겉보기 집안도 있어

57쪽


자궁 안에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존재가 떠올랐다

→ 아기집에서 내내 알리던 아기가 떠오른다

→ 아가집에서 늘 말을 하던 숨결이 떠오른다

67쪽


M에게 느껴야 할 부채 의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 ㅁ한테 느껴야 할 빚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는데

→ ㅁ한테 무엇을 빚졌는지 돌아보는데

79쪽


그런 행동을 용납하고 변명해 준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컸어

→ 그런 짓을 받아들이고 감싼 사람이 몹시 미웠어

→ 그렇게 굴어도 봐주고 들어준 사람이 참 싫었어

→ 그 따위를 들어주고 밀어준 사람이 꼴보기싫었어

129쪽


열한 살 때부터였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

→ 열한 살 때부터 괴로웠습니다

→ 열한 살 때부터 고달팠습니다

→ 열한 살부터 아팠습니다

→ 열한 살부터 힘겨웠습니다

153쪽


스스로 나의 길을 만들어 갈 힘을 얻었습니다

→ 스스로 길을 걸어갈 힘을 냈습니다

→ 스스로 길을 내려고 일어섰습니다

→ 스스로 길을 찾으며 힘냈습니다

154쪽


나는 절대로 엄마아빠 같은 사람이 안 될 거라는 것이다

→ 나는 엄마아빠 같은 사람이 될 마음이 아예 없다

→ 나는 엄마아빠처럼 살 마음이 조금도 없다

→ 나는 엄마아빠처럼 살 바에야 죽으련다

23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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