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7일. 철눈으로 큰눈이다.
나는 큰눈이라는 철눈에 태어났기에
해마다 이 철눈이 반가운데,
큰눈을 지나가면 겨울이 수그러들고
긴밤(동지)을 건너가면 겨울이 끝난다고
늘 느끼며 살아왔다.
온도계에 찍히는 눈금은
마땅히 더 내려갈 수 있되,
큰눈과 긴밤이 지나면
겨울은 저물어 간다.
그저 이뿐이다.
고작 16시에도 벌써 해가 넘어가려고 하니
마당에 넌 빨래를 걷어야 한다.
지나간 한글날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매듭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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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10.9.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우리말로 노래하는 식물도감》
숲노래 밑틀·최종규 글·사름벼리 그림, 세나북스, 2025.8.5.
한가위에 낀 귀퉁이인 한글날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이날은 ‘훈민정음날’이 아닌 ‘한글날’이다. 글을 지은 사람은 그분대로 뜻있되, 글을 가르치고 알리고 기틀을 다져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품으면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되새길 하루라고 본다. 그렇지만 나도 ‘한힌샘’이라는 분을 눈여겨본 지 얼마 안 된다. 이녁을 다룬 글이나 책부터 너무 드물고, 제대로 짚는 글이나 책은 아예 없다. ‘위인전’이 몇 나왔지만 겉훑기로 그칠 뿐 아니라, “왜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꾸었고, 왜 우리말·우리글로 독립운동을 해야 했으며, 왜 난데없이 벼락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왜 오늘날 우리는 한글길·한말길을 까맣게 잊으며, 어떻게 한빛을 새롭게 일굴 만한지” 살피는 책도 없다시피 하다.
지난 늦여름에 태어났지만, 한글날에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우리말로 노래하는 식물도감》을 생각한다. ‘풀꽃나무 들숲노래’는 2021년에 밑글을 마쳤으나 2025년에 드디어 펴냄터를 만났다. 네 해 앞서 태어나도 즐거웠을 테지만, 네 해를 삭였기에 더 손질하고 새로 다듬고 거듭 보태고 마지막으로 깁을 수 있다. 우리는 늘 우리말을 잊지만, ‘식물도감·곤충도감·동물도감’은 다 그냥 일본말이다. 우리는 ‘풀꽃책·벌레책·짐승책’이라 하면 된다. 지난날 어느 누구도 ‘식물·곤충·동물’이라 안 했다. ‘푸나무·벌레·짐승’이었고, 이 수수한 이름은 낮춤말이 아닌 이웃을 헤아리는 말씨이다. 움직이기에 ‘동물’이라는 이름이라면 억지이다. 풀꽃나무도 움직이는걸. 푸르게 덮어 푸근하게 품는 풀이고, 곱게 끝을 맺으며 새길로 가는 꼬마인 꽃이고, 나(사람)를 아끼고 보살피는 이곳에 서는(남는) 또다른 나(빛)이기에 나무이다. 볼볼·벌벌 기기도 하지만 스스로 버는 이웃인 벌레요, 즈믄빛으로 즐겁게 삶을 짓는 이웃인 짐승이다.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미국말이나 영어가 나쁠 일이 없다. 일본사람은 일본말을 쓰면 되고, 중국사람은 중국말을 쓰면 된다. 우리는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이 아니니, 그저 우리말인 ‘한말’과 우리글인 ‘한글’을 쓰면서 서로 다르게 빛나고 즐거운 사이로 어울린다. 일본나무를 들여도 되고, 영국꽃을 받아도 되고, 중국풀이나 미국짐승이 들어와도 된다. 그저 ‘나·너·우리’라고 하는 숨결을 고스란히 보살피면서 이웃살림을 맞이할 노릇이다. 나는 ‘풀꽃나무 들숲노래’를 쓰기 앞서도 곁에 있는 모든 풀꽃나무랑 함께 살아가고 나물로 삼고 철마다 새롭게 지켜보기도 했고, 이 꾸러미를 여민 뒤에도 새삼스레 쓰다듬고 둘러보고 안는다. 나도 너도 풀꽃나무가 내뱉는 숨을 마신다. 나랑 너가 내밭은 숨은 풀꽃나무가 마신다. 우리는 나란히 누리는 바람빛으로 하나이다. 철빛을 그리는 노래 한 자락을 나누고 싶어서 노래책(시집) 하나를 내놓았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