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오른죽지
어제하고 오늘 이틀에 걸쳐서 손글씨로 노래꽃을 옮겨적는다. 날마다 쓰는 노래꽃이지만, 몰아서 스물두 꼭지를 종이에 옮겨쓰자니 오른죽지가 결린다. 글자루에 담는다. 읍내 나래터로 나가서 부치기 앞서 살짝 눕는다. 등허리를 펴고 꾹꾹 주무른다. 눈을 스르르 감고, 자칫 14:00 시골버스를 놓칠 뻔한다.
어제는 읍내길을 걸으며 책을 읽다가 전봇대에 이마를 쿵 찧었다. 오늘도 책을 읽으며 걷는데, 조금 천천히 걸으면서 앞을 살핀다. 아무래도 어제는 너무 빨리 걸은 듯싶다. 어제는 14:00 시골버스가 아닌 15:00 시골버스로 읍내에 나온 터라 좀 서둘러야 했다. 안 느긋하면 박거나 부딪히거나 미끄러진다.
하루 볼일을 모두 마친다.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를 타러 걷는다. 읍내 버스나루에 가까울 즈음 우뚝 선다. 손이 가벼운 줄 느끼고는 “아차! 오늘 자루감을 장만하기로 했지!” 읽던 책을 얼른 덮고서 달린다. 아까 보아둔 감집으로 간다. 단감과 주먹감 사이에서 살피다가 주먹감으로 집어든다. 단감은 70알에 1만 원, 주먹감은 50알에 2만 원을 부른다.
등판은 땀으로 젖는다. 큰고장으로 책마실을 갈 적에도 한겨울은 땀바가지요, 시골에서 저잣마실을 할 적에도 늘 땀빛이다. 이 땀으로 살고, 이 땀으로 씻고, 이 땀으로 쉬고, 이 땀으로 노래한다. 땀냄새를 풍기며 걷고, 땀방울을 마치 씨앗처럼 길바닥에 뿌리면서 걷는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땀사람이자 땅사람이었으나, 요즈음은 땀아이나 땀어른을 스치기 어렵다.
저녁이 일찍 온다. 밤이 길고 고즈넉하다. 겨우내 고요히 흐를 밤빛일 테고, 별빛만 마당과 지붕과 뒤꼍을 어루만질 테지. 오늘밤도 별내가 하얗게 흐를 듯싶다. 돌아가는 시골버스에 오른다. 등짐과 자루감을 바닥에 놓는다. 숨을 돌리고서 하루글을 손으로 쓴다. 하루글을 맺을 무렵 마을 앞에 다다르려 한다. 마지막 두 줄은 집에 가서 적자. 등짐을 다시 메고, 자루감을 품에 안고서 내린다. 2025.11.2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