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 나의 작은 날들에게
류예지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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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8.

다듬읽기 279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3.7.



  여름에는 햇볕자리에 서야 안 덥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쐬어야 안 춥습니다. 가시밭길은 노래하며 걸으려고 눈앞에 나타납니다. 꽃길은 다같이 뛰놀려고 함께 짓습니다. 더위를 타는 사람은 햇볕자리에 안 서기 일쑤이더군요. 추위를 타는 사람은 찬바람을 참으로 안 쐬느라 몸이 기우뚱합니다. 누구나 가시밭길이며 자갈밭길을 차근차근 나아가기에 깨어납니다. 나 혼자 가면 될 꽃길이 아니라, 누구나 거닐 꽃길이니, 온누리가 꽃길에 숲길에 들길에 멧길에 바닷길에 바람길에 별길일 노릇입니다.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는 시골에서 나고자랐으나 일찌감치 시골을 박차고 서울(도시)로 떠난 발자국을 담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틀림없이 글감은 ‘예전 시골’이되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골’이며 ‘서울살이(도시생활)이 좋다’는 얼거리입니다. 누구나 시골을 싫어할 만하고, 서울을 좋아할 만하며,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시골을 따분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러다 보니 경상도에서 나고자라건 강원도에서 나고자라건 전라도에서 나고자라건, 요즈음 글바치는 하나같이 ‘서울내기 일본옮김말씨’예요. 예부터 시골에서 나고자란 누구나 모든 살림뿐 아니라 말과 마음도 손수 가꾸고 돌보고 지으면서 ‘나답게’라는 길을 지었습니다. 비록 시골과 동떨어진 오늘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멋부리는 겉글이 아닌, 마음밝히는 속글로 가다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멋내는 옷과 밥과 집이 나쁘지는 않지만, 멋이란 언제나 남눈에 얽매입니다. 수수한 옷과 밥과 집이란 언제나 스스로 돌보는 ‘나답게’입니다. 말길과 글길은 ‘멋내기’가 아닌 ‘나답게’여야 어울리겠지요.


ㅍㄹㄴ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


촌 동네의 생활을 하품이 날정도로 지루해하는 동안 준비 없어 어른의 길목에 들어섰다

→ 시골살이는 하품이 날 만큼 따분했고 어느새 어른이란 길목에 들어선다

→ 하품이 날 만큼 심심한 시골에서 살다가 문득 어른이란 길목이다

→ 하품이 나도록 지겨운 시골에서 보내다가 덜컥 어른이란 길목이다

4쪽


철새의 삶을 살게 되면서

→ 철새살이를 하면서

→ 철새처럼 살면서

→ 철새마냥 살면서

4쪽


파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결국 사라져 버릴 날들에

→ 조각조각 흩어지다 끝내 사라질 날에

→ 조각이 나다가 마침내 사라질 날에

6쪽


나의 지난날들이 나에게 그러했듯 당신의 지난날들이 당신에게 보낸 신호에

→ 나는 지난날 나한테 했듯 너는 지난날 네가 보낸 말에

→ 내가 지난날 나한테 했든 네가 지난날 너한테 한 말에

7쪽


동네 초입에 자리한

→ 마을 앞에 자리한

→ 마을 앞

→ 마을 어귀

15쪽


누군가는 제 아빠의 목마를 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 누구는 아빠 목말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 누구는 아빠 무등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15쪽


이후 일가친척 어르신이 집을 방문하는 날,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불편함으로 각인되었다

→ 이제 피붙이 어르신이 집을 찾는 날,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거북하다

→ 곧이어 한집안 어르신이 찾아오는 날,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껄끄럽다

23쪽


새하얀 피부를 가진 탓에 종종 뺨 위의 주근깨가 도드라져 보였다

→ 새하얀 살결이라서 뺨에 난 주근깨가 곧잘 도드라진다

→ 살빛이 하얀 탓에 주근깨가 도드라지기도 한다

→ 하얀살이라서 주근깨가 돋보이기 일쑤이다

30쪽


묵직한 동체(動體)가 가한 충격

→ 묵직한 몸이 부딪혀

→ 묵직히 움직이며 때려

35쪽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이한 상흔을 남긴

→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틀린 자국을 남긴

→ 오붓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바보처럼 흉을 남긴

→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엉킨 멍울을 남긴

77쪽


우리는 사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우리는 모래언덕으로 걸어간다

→ 우리는 모래뫼로 걸어간다

86쪽


별다른 공통점 없는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 가는 일이 조금 피로하게 여겨지기도 해서였다

→ 딱히 닿지도 않는 말을 이어가는 일이 조금 지치기도 했다

→ 썩 뜻이 같지도 않는데 얘기하자니 조금 힘들기도 했다

→ 그리 안 어울리는 얘기를 잇자니 조금 버겁기도 했다

97쪽


엄마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 엄마는 딱히 대꾸도 없이

→ 엄마는 군말도 없이

→ 엄마는 긴말도 없이

→ 엄마는 뭐라 하지 않고

→ 엄마는 따지지도 않고

103쪽


오늘 퇴근길 귀찮아지게 생겼네

→ 오늘 마치며 귀찮겠네

→ 오늘 집에 가며 귀찮겠네

121쪽


친구 A의 간곡한 호소가, 각자의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만 죽어라 쳐다보던 친구 B와 나를 단합시켰다

→ 동무 ㄱ이 애타게 바라자, 다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나를 묶었다

→ 동무 ㄱ이 빌고 빌자, 저마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내가 뭉쳤다

128쪽


처음 맛본 어죽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맛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 처음 고깃밈을 맛보며 맛결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 처음 고깃보미를 맛보며 맛빛을 새롭게 일깨웠다

129쪽


참새과 텃새의 종류인 딱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참새갈래 텃새인 딱새인 줄 알아냈다

151쪽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 장마를 알리는 장대비가 온다

→ 장마를 알리며 굵게 비가 쏟아진다

159쪽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여름끝을 알리는 비가 내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끝을 알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이 끝난다

17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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