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새벽일·새벽특송 (회 좋아하셔요?)
나는 날살(회膾)을 안 즐긴다. 날살이 아닌 ‘굽살(굽고기)’도 안 즐긴다. 바깥일을 볼 적에 이웃님이 사준다면 먹기는 하지만, 날살도 굽살도 당기지 않는다. 안 먹는 쪽이 가장 낫다. 달콤이(초콜릿)라든지, 그냥 밥(쌀)과 빵(밀)이라든지, 수수하게 끓인 된장국이라든지, 보리술(보리) 몇 모금을 조촐히 차리면 넉넉하다고 느낀다.
전남 고흥에서 살기 앞서까지 ‘새벽특송’을 잘 몰랐다. 다만 얼핏설핏 보았다. 인천에서 나고자라느라 밤새도록, 더구나 새벽에 더더욱 끝없이 내달리는 큰짐차를 마을앞에서 밤새도록 보았다. 어릴적에 ‘경인고속도로 첫자락’ 옆에서 살았기에, 이곳을 드나드는 숱한 큰짐차가 ‘전남’부터 달려온 줄 알았지만 무슨 짐차인지는 거의 몰랐다.
우리집을 전남 고흥으로 옮기니 그야말로 숱한 이웃님이 “회 좋아하나 봐요?” 하고 물었다. “아닌데요?” 하고 대꾸해도 숱한 이웃님은 “깨끗한(해상국립공원)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사는데 회를 안 좋아한다고요?”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더라.
고흥을 비롯해 ‘깨끗바다’에서 낚는 바다살림이 어마어마하다. 다만, 이 바다살림을 ‘깨끗바다 시골’에서는 못 먹거나 안 먹는다. 죄다 ‘새벽특송’으로 서울·인천·부산을 비롯해 광주·대전·대구로 쫙쫙 뿌린다. ‘깨끗바다’를 품은 나루터에는 00시 무렵부터 큰짐차가 줄을 서는데 하나같이 꽁무니에 ‘새벽특송’이라는 글씨가 찍힌다. “가장 싱싱하고 물좋은 바닷고기”를 얼른 큰짐차에 실어서 길이 가장 널널한 한밤과 새벽에 무시무시하게 달린다.
간추려 말하자면, 깨끗바다 고흥에서는 ‘물좋은 날살’이 아닌 ‘물 안 좋은 날살’을 오히려 비싸게 먹는 얼거리이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고장일수록 ‘물좋은 날살’을 ‘그날 낚은 그대로 곧장’ 더 값싸게 먹을 수 있다. 이 모두 ‘새벽특송’이라는 힘이다.
그렇다면 깨끗바다를 품은 고흥을 비롯한 시골은 뭘 먹는가? ‘특급·특특급·특특특급’은 몽땅 서울·서울곁·부산으로 가고, ‘1급·2급’도 큰고장으로 간다. ‘3급’이나 ‘찌끄러기’가 이 시골에 남는다. 고기잡이를 하는 이웃님이 들려주는 말로는 “고흥에요? 마, 고흥에는 4급도 안 되는 것들만 남지요.” 하면서 허허 웃더라. “돈 받고서 팔기 힘든 찌끄레기”를 시골에서 먹는 얼거리이다. 이 얼거리를 아는 사람은 ‘날살’을 서울에서만 먹는다. 이 얼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찌끄레기 날살’을 시골에서 바가지와 덤터기를 쓰면서 먹는다.
새벽일이란 무엇일까? 새벽길이란 무엇인가? 이 나라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이미 일찌감치 오래오래 모든 ‘새벽길’은 ‘서울바라기(+ in Seoul)’였다. 우리가 제대로 몰랐거나 안 쳐다봤거나 등돌렸을 뿐이다. ‘쿠팡 새벽배송 택배노동자’만 따로 떼놓고서 ‘새벽배송 금지’라는 허울을 ‘노동자 권익·인권’이라는 핑계로 밀어대지 말아야 할 노릇이다. 온나라는 예전부터 새벽길로 서울을 떠받쳤다. 게다가 ‘중국 알리익스프레스’가 2025년 11월 14일에 ‘한국 새벽배송’을 ‘신세계’와 손잡고서 한다고 외치는데, 어느 누구(정치권·지식인)도 ‘중국돈’이 쳐들어오는 수렁을 막거나 나무라지 않네.
우리는 뜬구름이나 허울이 아니라, 삶과 살림과 숲과 시골을 차분히 바라보아야 할 노릇이다. 우리는 온통 서울바라기인 이 나라가 어떻게 뒤틀렸는지 제대로 짚어야 할 노릇이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닌, 풀잎과 나뭇잎과 꽃잎처럼 푸르고 맑고 싱그럽게 이야기를 이을 ‘입’을 열어야 할 일이다.
새벽에 일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아침과 낮과 저녁에 ‘멀쩡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새벽에 땀을 옴팡지게 흘리는 일꾼이 대단히 많다. ‘새벽일꾼’을 헤아리는 길(정책)이 아니라, 새벽일꾼을 안 쳐다보면서 허울좋게 ‘노동·인권·복지’를 읊지 말자. 참말로 ‘노동·인권·복지’를 제대로 펴고 싶다면, 서울을 풀어헤쳐서 누구나 시골에서 푸른살림을 느긋이 짓고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아름나라로 갈아엎을 노릇이다. 2000만을 훌쩍 뛰어넘는 사람들이 서울과 서울곁에서 살아가는데, 새벽길은 앞으로 더 늘어나면 늘어날 뿐 터럭만큼도 줄어들 수 없다. 2025.11.5.
ㅍㄹㄴ
“中 택배기사에게 아파트 비번을?”…‘새벽배송 금지’ 논란에 불안 확산
https://n.news.naver.com/article/024/0000101308
“쿠팡 막으면 중국이 들어온다고요?”…‘새벽배송 금지’ 논란에 번지는 소비자 불안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4082546?sid=101
"쿠팡 막으면 알리 중국인 택배기사가?"…'새벽배송 금지' 논란에 소비자 '불안' 확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555895?sid=102
[기자수첩] 中 알리·테무 파고드는데 '새벽배송' 전면 금지가 대안일까
http://point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9813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