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아파트를 사다
책벌레끼리 하던 말이 있다. “여, 자네는 몇 평짜리를 샀나?” “나? 이제 서른 평 되려나.” “서울 강남? 서울 강북?” “어, 서울은 안 되고 인천쯤 귀퉁이에서.” 얼핏 듣자면 ‘아파트’를 샀다는 말 같지만, 책벌레는 ‘아파트 값’에 빗대어 여태 책값을 얼마쯤 바쳤는지 가볍게 웃으며 주고받는다. “허허, 어느덧 서울 강남에 조고만 한 채를 샀네.” “서울 강서에 한 채 샀어도 잘 했지.”
책벌레는 하루하루 값을 늘린다. 처음에는 “시골 멧밭 한 뙈기”만큼 돈을 들여서 책을 사읽었다면, 어느새 “시골논 한 마지기”만큼 돈을 들여서 책을 사읽고, 이윽고 광주나 대전 즈음으로 깃들고, 바야흐로 안산이나 구리 즈음 깃들더니, 인천이나 부천이나 의정부로 다가가고, 마침내(?) 서울로 들어서면 어쩐지 ‘어깨뿌듯’ 같으나, 삶자락은 참으로 조그마한 빌림집이기 일쑤이다.
책벌레로서 서울에서 “내 집 장만”이란 엄두를 내기 버겁다. 책값에 들인 돈을 책에 안 들였다면 웬만한 책벌레는 “서울 강남 한 채쯤” 우습지(?) 않았을 만하다. 참말로 숱한 책벌레는 책이 아니라 잿더미(아파트)에 눈을 두었으면 “서울 강남 두 채”를 장만했을 만하다.
그러나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잿더미는 값이 껑충껑충 뛴다. 이제는 “서울 강남 작은 한 채”는커녕 “서울 강서와 강북 작은 한 채” 값에 댈 수 없는 판이다. 요즈음 잿값(아파트 가격)을 보노라면, “서울이건 인천이건 부산이건 아예 발을 못 들이”는구나 싶고, “전남 고흥 읍내 아파트 한 채”로 여겨야 할 듯싶다.
책벌레가 우스갯소리로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거니 말거니 하는 말을 더는 할 수 없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볼 만하다. 서울 냇밑마을(강남)에서 잿더미 한 채를 굴리는 사람은 집에 책을 몇이나 둘까? 10억도 20억도 아닌, 50억이니 100억이니 춤추는 잿값인데, 잿값을 굴려서 샛돈(시세차익)을 억억억 소리 나게 긁어모으는 분들은 “책을 읽기”나 할까? 아예 안 읽지는 않을 수 있지만, 억억억 소리를 내는 분들은 돈더미에 파묻히거나 깔려서 숨막히는 나날이지는 않을까? 2025.10.2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