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부채질 (2025.8.23.)

― 부산 〈금목서가〉



  부산에 일찍 닿아야 하기에 고흥에서 06:20부터 움직입니다. 옆마을을 스치는 첫 시골버스를 타려고 논두렁을 달립니다. 풀죽음물을 듬뿍 머금은 논은 여름소리가 죽어요. 풀죽임물을 덜 탄 논에는 논거미가 있고 풀벌레노래가 조금 흐릅니다.


  사상나루에서 전철을 갈아타자니, 부채질하는 아줌마가 꽤 보입니다. 찬바람(에어콘)으로 이미 서늘하지만, 이 서늘칸조차 못 견디는 삶입니다. 드디어 밖으로 나와서 볕길을 걸으니 등판과 이마에는 땀이 흐르되 즐겁습니다. 여름에는 뙤약볕을 누리며 일하거나 살림하는 맛입니다.


  〈금목서가〉로 걸어가는 길은 오르막입니다. 반반길이 아니라서 힘겹다고 여길 분이 있을 텐데, 아이들은 이런 오르막이나 언덕이나 비탈을 즐깁니다. 늘 새로운 길이거든요. 우리는 어른으로서 오르막을 어떻게 여기나요? 땀나며 고되다고 여기나요? 바다가 늘 하늘빛을 품으려면 오르내리는 물결이어야 하듯, 사람살이도 물결마냥 신나게 출렁이면서 아름다운 줄 느끼나요?


  그나저나 〈금목서가〉는 2026년 여름까지만 만날 수 있다더군요. 이듬해인 2026년에는 새삽질(재개발)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다고 합니다. 아찔하지만 우리 민낯입니다. 삽질과 새삽질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난 예순 해 남짓을 거치면서 틀림없이 온몸으로 겪었을 텐데, 겪기만 할 뿐 배우지는 못 하고, 조금 배웠어도 익히지는 않았구나 싶어요.


  모든 삽질은 새삽질로 잇고, 새삽질은 더삽질로 닿고, 더삽질은 끝삽질(끝없이 삽질나라)로 잇습니다. “마당 있는 작은집”은 삽질이 아닌 손질로 잇는 살림길입니다. 예부터 푸른별 온누리 사람들은 “마당을 비롯해서 들숲메바다를 품은 작은집”을 건사하고서, “집에서 살림을 짓는 하루”를 스스로 누리고 이웃하고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누리고 나눈 하루를 갈무리해서 이야기가 깨어나고, 이야기를 입으로 잇고 물려주면서 말과 글과 책이 태어납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그저 ‘나·너·우리 눈’으로 보고 느낀 대로 쓰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입으로는 길(법)을 읊지만, 정작 몸으로는 길(법)하고 어긋날 적에, 바로 어떻게 골로 가는가 보여주는 숱한 거울을 돌아봐요. 누구나 배우기에 삶이고, 저마다 익혀서 나누기에 사람이고, 함께 누리고 노래하기에 사랑입니다.


  묵은해와 새해 사이를 사뿐히 지나가는 길입니다. 이 하루를 파란하늘처럼 사랑으로 품는 오늘을 뚜벅뚜벅 거니는 첫날이기를 그리면서 살아갑니다. 오늘도 되새깁니다. “난 오늘까지 책을 엄청 읽었지만, 앞으로 읽을 책에 대면 모래알이야.”


ㅍㄹㄴ


《행복의 조건》(존 포웰/정홍규 옮김, 분도출판사, 1995.9.1.첫/1996.재쇄)

《할머니의 요리책》(최윤건·박린, 위즈덤하우스, 2019.9.27.)

《0세부터 배우는 유아영어》(시찌다 마꼬도/김현수 옮김, 민지사, 1992.11.30.첫/1994.7.30.2벌)

#七田眞

《神學展望 38호》(정하권 엮음, 대건신학대학 전망편집부, 1977.9.1.)

《새로운 아틸란티스》(프랜시스 베이컨/김종갑 옮김, 에코리브르, 2002.1.24.)

#TheNewAtlantis #FrancisBacon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김남희, 문학동네, 2021.11.25.)

《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서윤영, 궁리, 2012.5.14.)

《흐느끼는 낙타》(싼마오/조은 옮김, 막내집게, 2009.2.11.첫/2010.5.1.2벌)

《싱커》(배미주, 창비, 2010.5.15.첫/2010.10.5.3벌)

《자꾸만 꿈만 꾸자》(조온윤, 문학동네, 2025.5.1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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