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8.2.

숨은책 1070


《아기와 비둘기》

 최병엽 글

 아동문예

 1991.6.25.



  우리 아버지는 1991년에 《아기와 비둘기》라는 노래책을 ‘동심천사주의’로 이름높은 ‘아동문예’란 곳에서 얼추 250만 원을 펴냄터에 바쳐서 내놓습니다. 다른 글바치(시인)도 이렇게 돈을 바쳐서 책을 냈다지요. 〈소년중앙〉 글보람(신춘문예)을 타면서 콧대를 높인 그분은 “교감이자 신춘문예 당선시인이 13평짜리 코딱지만 한 집에서 살면 얼굴이 안 선다”고 여기면서, 빚을 내어 48평짜리 인천 연수동 새 잿더미(아파트)로 갑자기 옮기기로 합니다. 지난날을 돌이키면 ‘늘 창피한 울 아버지’인데, 그분이 안 창피했다면, 그분이 ‘코딱지 13평 작은집’을 안 떠나려 했다면, 저도 그냥 인천에 뿌리를 내려서 작은책벌레로 조용히 살았을 텐데 싶더군요. 작은책벌레는 작은숲을 잃으면서 먼길을 돌았습니다. 작은책벌레는 ‘동심천사주의’가 아닌 ‘아이곁에서’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수수한 어버이로 삶을 누리면서 늘 우리 아이들하고 하루를 노래하려는 마음입니다. 옛집 마루에 멧더미처럼 쌓였던 《아기와 비둘기》는 딱 한 자락 남았습니다. 다 어디를 떠돌겠지요. 이 창피한 노래책 겉에 깃든 ‘비둘기한테 모이 주는 아이’는 제 어린날 모습입니다. 그분은 어느 날 인천 송도유원지로 언니랑 저를 데려가서 제 모습을 신나게 찍으셨어요. 이러고 얼마 뒤에 이 책이 나왔습니다. 얼굴몫(초상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아이가 새랑 노는 모습을 이녁 책에 담고 싶다면 먼저 물어보기라도 하고, 고맙다는 말 한 마디라도 해야 할 테지만, 아이한테 늘 술담배 심부름을 시키던 그분은 늘 그저 그랬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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