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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딩 아빠다 ㅣ 창비청소년시선 11
정덕재 지음 / 창비교육 / 2018년 3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5.17.
노래책시렁 497
《나는 고딩 아빠다》
정덕재
창비교육
2018.3.5.
저는 빨리 말하지 못 합니다. 여느 사람하고 대면 꽤 느려서 저더러 충청사람이냐고 묻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누구나 말을 할 뿐이요, 빠르거나 느리다고 재야 하지 않고, 빠르건 느리건 저마다 다르게 말빛을 펴며 만날 뿐입니다. 어느 분은 저더러 “듣는 사람을 헤아려서 천천히 말씀하나요?” 하고 물어요. 곰곰이 짚자니 이 말씀도 맞겠구나 싶어요. 저는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라는 몸을 타고난 터라, 조금만 빨리 말하려고 하면 혀가 꼬이거나 쉽게 더듬습니다. 더듬지 않거나 혀가 안 꼬이려면 느릿느릿 말해야 하는데, 느릿말을 하노라니 “둘레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할 적에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매무새”가 몸에 배더군요. 《나는 고딩 아빠다》를 읽으며 내내 아쉬웠습니다. 아버지라면 그저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초딩이나 중딩이나 고딩이나 대딩 아버지가 아닌 “그저 아버지”요, “아이곁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어버이”라는 이름이면 넉넉합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들려줄 말은 늘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아버지로서 살아갈 길은 으레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그러나 글님은 자꾸 술 얘기에 ‘네 나이쯤 난 이미 살아 봤으니 알지’ 같은 핀잔이 잇습니다. 아이가 이제부터 살아갈 ‘어진 앞길’을 노래할 수 있는 아버지이기를 빕니다.
ㅍㄹㄴ
술에 취해 비가 내린 날 / 걸어오는지 / 집을 떠나는지 / 낯익은 청년의 그림자가 / 내 앞에서 어른거린다 (비가 온다/21쪽)
이제는 손가락에 침을 바르기 전에 / 돋보기를 먼저 찾아야 할 나이 / 책벌레같이 굴러다니는 / 작은 글자들을 만지작거리면 / 옛날 교실 풍경이 아른거린다 (수업 시간에 소설책 읽기/29쪽)
소주를 얼마나 마시면 취하냐는 / 질문에 / 답을 하지 못했다 (채우니 비우더라/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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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딩 아빠다》(정덕재, 창비교육, 2018)
세상을 만나는 관계의 시작이 손이다
→ 우리는 손으로 처음 만난다
→ 우리는 서로 손부터 만난다
10쪽
고통의 상처를 남길 때
→ 괴롭게 생채기 남길 때
→ 아픈 자국을 남길 때
11쪽
닳아진 구두
→ 닳은 구두
13쪽
건너편 점멸의 신호는 사춘기를 비춘
→ 건너 깜빡불은 꽃나이를 비춘
→ 건너에서 깜빡이며 꽃날을 비춘
14쪽
반성과 회한의 석고대죄는 아닐지라도
→ 뉘우치고 울며 빌지는 않더라도
→ 돌아보고 아리며 엎드리지 않더라도
18쪽
아들이 폭탄선언을 한 것은
→ 아들이 외친 때는
→ 아들이 소리친 날은
→ 아들이 밝힌 때는
22쪽
1등급 한우만 취급해
→ 으뜸 한소만 다뤄
→ 첫째 누렁소만 팔아
30쪽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 참으로 까마득하다
→ 참으로 감감하다
→ 참으로 먼 일이다
35쪽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결정장애다
→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 사이에서 망설인다
→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38쪽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혜련 양에게라고 적었다
→ 쓰고 지우기를 하다가 마침내 혜련 씨한테라고 적는다
42쪽
단발머리에 약간의 볼 화장을 한 듯 홍조가 예쁜 아이였다
→ 귀밑머리에 볼을 살짝 바른 듯 발갛게 예쁜 아이였다
→ 몽당머리에 볼을 가볍게 바른 듯 발그레 예쁜 아이였다
44쪽
소주를 얼마나 마시면 취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 불술을 얼마나 마시면 거나하냐 묻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
→ 불술을 얼마나 마시면 곤드레냐 묻는데 대꾸를 못했다
86쪽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 파란 하늘을 뒤로
100쪽
들은 복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 들은 겹을 나타내는 끝가지다
→ 들은 겹겹을 뜻하는 뒷가지다
102쪽
가불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 자주 당겨쓴다
→ 자꾸 먼저 받는다
10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