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25. 깨달은 때



  ‘깨닫다’는 ‘깨다 + 닫다(달리다)’인 얼거리이다. 깨기만 해서는 알지 않는다. 깨고 나온 다음에 새걸음을 내닫아야 비로소 둘레를 보면서 너랑 나를 판가름할 수 있고, ‘나너우리’라는 새길을 바라본다. 깨닫는 사람은 담벼락을 깨고서 스스럼없이 박차고 나오는 사람이다. 남들이 같이 나갸기에 나가지 않는다. 담벼락은 늘 모두 가두는 줄 알아차렸으니 나부터 의젓하게 숲바람을 마시려는 이슬받이일 뿐이다.


  오늘은 부천 〈용서점〉에서 노래짓기를 나누는 하루이다. 옆마을로 지나가는 시골버스가 07:40에 지나가는데, 짐을 꾸리고 보니 07:35이다. 꿈길에서 노는 작은아이를 쓰다듬고서 얼른 달린다. 논두렁을 신나게 가른다. 꼭 07:40에 닿았고, 시골버스는 07:44에 들어온다.


  논두렁을 달리며 헤아리자니, 오늘은 기나긴 서울길에 읽을 책을 하나도 안 챙겼다. 버스와 전철과 거님길에서 읽으려고 몇을 빼두었으나 고스란히 놓고 나왔구나. 그렇다면 오늘은 긴긴 길에서 글꽃(동화)을 쓰면 되겠거니 여긴다. 읽으니 배우고, 쓰기에 익힌다. 거닐며 살피고, 달리며 느낀다.


  손발과 팔다리와 눈코귀입을 쓰는 사이에 온누리를 느끼고 받아들여서 새롭게 녹인다. 손과 팔은 짓고 가꾸고 일구고 돌보고 보듬으라는 몸이다. 발과 다리는 두루 걷고 달리고 뛰고 서며 만나라는 몸이다. 눈코귀입은 고루고루 움직이며 깊넓게 품으라는 몸이다. 마음은, 온몸으로 배운 바를 고스란히 담아서 삭이는 밭이다. 머리는 마음으로 삭인 모든 삶을 새로 추슬러서 꽃피우는 길이다. 넋은 이 얼거리를 찬찬히 밝히며 누리늘 빛이다.


  누가 깨닫는가? 걷고 뛰고 달리며 땀방울로 웃고 울며 노래하는 너랑 내가 깨닫는다. 누가 안 깨닫는가? 안 걷고 안 뛰고 안 달리느라, 웃지도 울지도 노래하지도 않는 너하고 내가 안 깨닫는다.


  쟤가 깨닫든 말든 아랑곳할 일이 없다. 쟤를 쳐다보기에 다들 스스로 빛을 잊으면서 서로 똑같이 안 깨닫더라. 너는 널 보면 되고, 나는 날 보면 된다. 스스로 깨닫는 너랑 내가 만나기에 우리별은 푸른숲빛으로 푸른별이면서, 파란바람으로 파란별이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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