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도시락 (2025.1.18.)
― 부산 〈카프카의 밤〉
갈수록 ‘도시락’이 무엇인지 잊는 사람이 늘고, 아예 모르는 어린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도시락을 싸는 사람이 있고, 호젓이 도시락을 누리는 수수한 이웃이 있습니다. 도시락을 잊고 잃은 오늘날 배움터와 살림터이기에, 손수 짓는 손길을 나란히 잊고 잃을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배움터와 일터에는 ‘밥터(급식실)’가 아니라 ‘부엌(함께 밥을 짓고 누리는 자리)’이 있을 노릇이라고 느끼는데, 곰곰이 보니 ‘부엌’이라는 낱말을 처음 듣는다는 어린이도 꽤 늘었습니다.
〈카프카의 밤〉에서 ‘이응모임(읽고 잇고 있으며 이야기하는) 9걸음’을 엽니다. 《이오덕 일기》를 놓고서 어제·오늘을 맞대고, 이제부터 새로 바라볼 모레를 곰곰이 그립니다. 참살림이 사라진 곳이라면 아무리 잘 가르친들 손수짓기가 없는 쳇바퀴나 말잔치에 그칩니다. 지난날에는 놀이터가 없이도 모든 어린이가 신나게 뛰놀았으나, 오늘날에는 놀이터가 ‘잿터(아파트 단지)’마다 있으나 아이 그림자를 보기 어려워요. 요사이는 글쓰기를 하는 이웃이 아주 많지만, 막상 스스로 일구는 삶·살림이 아니라 ‘잘 써서 잘 보이려는 치레’에 기울기 일쑤입니다.
둘레 사람이 좋아하는 글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글이기는 어렵습니다. ‘좋다’라는 낱말은 ‘좁다’를 나타냅니다. ‘좋다 = 마음에 들다’인 터라, 둘레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글은 “둘레 사람이 가까이하면서 누리는(소비하는) 글”이고, 이런 글은 늘 물갈이하듯 바뀌는 부스러기(소모성·일회성 정보)입니다. 이를테면 서로 다투거나 싸우도록 불씨를 붙이는 줄거리를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줄거리에는 우리가 스스로 이 삶을 사랑하는 살림길하고 동떨어지더군요.
‘잘 쓴 글 = 좋은글’인 얼거리입니다. 그렇다면 글을 왜 잘 써야 할까요? 왜 ‘둘레에서 좋아하는 글’을 써야 할까요?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하루를 사랑으로 짓는 이야기’를 쓰면 넉넉하지 않을까요? ‘눈치(남이 좋아하느냐 마느냐 하는)’를 내려놓으면 ‘눈빛(내가 나로서 나답게 보는)’을 가꾸면서 비로소 ‘이야기(좋은글도 나쁜글도 아닌 우리 삶)’를 쓸 수 있습니다. 언제나 오늘 이 하루를 손수 추슬러서 몸소 다독이는 글을 쓴다면, 누구나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빛이로구나 싶은 이야기를 여미어서 나눌 만하다고 봅니다.
어린이가 도시락을 손수 싸기를 바라요. 푸름이도 도시락을 스스로 싸기를 바랍니다. 또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배움터에서 11시 30분쯤 이르면 다들 부엌으로 가서 스스로 누릴 밥을 지으면서 수다판을 누리기를 바라요. 살림짓기를 배우는 곳이어야 배움터입니다. 하루짓기를 누리는 곳이기에 보금자리요 마을입니다.
ㅍㄹㄴ
《일이어도, 일이 아니어도》(요시나가 후미/김솜이 옮김, 문학동네, 2024.8.30.)
《슬기로운 좌파생활》(우석훈, 오픈하우스, 2022.1.21.)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차혜경·유정미 옮김, 바람, 2005.12.10.)
《아톰의 철학》(사이토 지로/손상익 옮김, 개마고원, 1996.8.20.)
《불새 5》(데즈카 오사무/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02.3.25.)
《문조님과 나 1》(이마 이치코/이은주 옮김, 시공사, 2003.6.20.)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