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1.29. 여우눈
남이 “그곳은 친절해!” 하고 말하더라도 나한테는 “안 맞는” 곳일 수 있다. 남이 “그곳은 불친절해!” 하고 막더라도 나한테는 “거리낌이 없어서 알맞는” 곳일 수 있다. 남이 많이 읽는 책이어야 내가 읽을 책이지 않고, 남이 안 읽는 책이기에 내가 안 읽을 책이지 않다.
남이 많이 찾아가는 곳이기에 내가 찾아가거나 마실할 곳이 아니듯, 내가 찾아가고 마실하며 만나려는 이웃이 있는 곳에 사뿐사뿐 찾아가고 마실한다. 남을 등돌려야 할 까닭은 없되, 남은 남대로 즐겁게 이 삶을 누리는 하루일 테고, 나는 나대로 기쁘게 오늘 하루를 맞이하는 발걸음이라고 느낀다.
여름에는 여우비가 오는 전남 고흥 시골자락인데, 겨울에는 여우눈이 온다. 이곳에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날씨와 하늘과 별과 밤과 ‘전라사람’과 ‘막장’을 떠올린다. 경남 끝에 깃든 통영이며 거제이며 남해이며 고성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이녁 고장을 ‘막장’으로 여길까?
이곳이 막장이라고 느끼며 살아온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몽땅 ‘시골밖(+ 고흥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얼마 안 남은 시골아이들은 안간힘을 쓰면서 ‘시골밖(+ 고흥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이 끝자락 시골에는 ‘인구소멸위기지원금 + 저출산대책지원금’이 허벌나게 쏟아지고, 농림부와 농업개발공사에 국토부에 갖가지 벼슬터에서 ‘지역상생 +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또 목돈을 허벌나게 베풀어 준다. 해마다 쏟아지는 허벌난 ‘돈비·돈눈(지원금)’은 모두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지 아리송하다. 그토록 돈비에 돈눈이 쏟아졌으나 해마다 어린이·푸름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시골버스에서 얼굴을 스친 아이들은 열아홉 살 즈음을 넘어서면 다시는 볼 수 없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나비가 춤추어도
커다란 바람개비로 농약을 허벌나게 뿌려대어
이윽고 다 죽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