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쉬어가는 꽃으로 (2024.5.29.)

― 부산 〈읽다가게〉



  저녁에 ‘부산 시민소리숲(시민도서관)’에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합니다. 새벽에 일찌감치 길을 나섭니다. 시골버스하고 시외버스에서는 흰종이에 노래를 부지런히 옮겨적습니다. 오늘 이야기꽃에 함께하는 부산이웃한테 하나씩 드리려고 합니다. 손목을 쉴 틈이 없이 옮겨적노라니 한나절이 훅 지나고, 시외버스는 어느새 사상나루에 닿습니다. 예전에는 버스·전철에서 책만 읽었습니다. 요즈음은 노래를 새로쓰거나 옮겨적으면서 보냅니다. 어느 이웃님한테 어느 노래가 갈는지 모르지만, 새로쓰고서 옮겨적는 동안 새삼스레 되읽으면서 글손질을 합니다.


  ‘시민소리숲’에 가기 앞서 덕천에 있는 스스로책집(무인책집)인 〈읽다가게〉부터 찾아갑니다. 책집지기는 자리에 없지만, 책시렁을 돌아보는 동안 책집지기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가려서 갖추었는지 느낄 만합니다. 왜 이곳에 〈읽다가게〉를 열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덕천에는 책집이 몇 없다더군요. 부산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도 책집은 한켠에 몰립니다. 잘될 만한 데에 몰릴 수 있지만, 사람들 발길이 조금 더 잦은 데에 열게 마련입니다.


  시골에는 책집이 ‘무늬로만(수험서·참고서 납품)’ 있거나 아예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골에서 책집을 여는 분은 드뭅니다. 시골내기라면 시골책집을 열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그야말로 책손은커녕 발걸음부터 없을 수 있습니다.


  큰고장에서도 기스락마을이나 언덕마을은 책집이 깃들기 어렵습니다. 기스락마을이나 언덕마을에는 다른 가게도 드물어요. 그런데 막상 책집이 들어설 만한 데는 기스락마을과 언덕마을과 골목마을이라고 느껴요. 작은집 곁에 작은책집이 있고, 작은마을에 작은책숲이 있을 적에, 마을살이와 마을살림을 푸르게 바라보는 길눈을 틔울 만하다고 봅니다. 나라(정부)나 고을(지자체)은 이런 데에 마음을 안 쓰는데, 마을사람이 눈빛을 틔워서 깨어나기를 안 바라는 탓이지 싶습니다.


  사뿐히 돌아보고서 자리를 옮깁니다. 해거름부터 이야기를 폅니다. “누구나 우리말과 삶말에 깃든 말밑을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우리말꽃》이라는 책을 부산 작은펴냄터에서 선보인 뜻 그대로입니다. 글을 잘 써야 꽃(문학)이지 않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우리 삶을 손수 갈무리하고 사랑하는 살림으로 펴는 말이라면 언제나 꽃(문학·문화)입니다. 멋스럽거나 높거나 대단해야 하지 않기에 말을 글로 옮기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곰곰이 보면 모든 책은 꾸러미(사전)입니다. 다 다른 책은 다 다른 사람이 스스로 일구고 지은 살림을 담으니, 작은수다 한 자락은 ‘작은낱말책’인 ‘작은말꽃’에 ‘작은씨앗’입니다.


ㅅㄴㄹ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 달, 2024.3.29.)

《하필 책이 좋아서》(정세랑·김동신·신연선, 북노마드, 2024.1.11.)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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