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4.11.21.

오늘말. 일구다


시골 논두렁에 늦가을이면 노랗고 작게 수북수북 돋는 들꽃이 있습니다. 멧자락에도 노랗게 물들이는데, 자그마치 늦겨울부터 한가을까지 내내 잠들다가 늦가을에 이르러 천천히 줄기를 올려서 돋는 멧노랑(산국)입니다. 여러 해에 걸쳐서 멧노랑 씨앗을 받아서 우리 집 기스락에 뿌렸어요. 올해에 드디어 자리를 잡으면서 곳곳에서 올라오더군요. 텃씨는 이듬해에 곧장 깨어나기도 하지만, 여러 해 걸릴 수 있습니다. 손수 일구면서 더 일찍 싹틔울 수 있고, 느긋이 가꾸면서 두고두고 일으킬 수 있어요. 보듬는 손길이기에 품습니다. 살리는 눈길이기에 아늑하지요. 누가 가르쳐야 깨닫지 않습니다. 씨톨은 이미 속으로 밑자락이 든든합니다. 사람씨도 풀씨도 짐승씨도 헤엄씨도 벌레씨도 나비씨도 매한가지예요. 피톨에는 저마다 몸과 마음을 이루는 밑뿌리가 있어요. 밤이면 드리우는 빛줄기가 깃들고, 낮이면 환하게 퍼지는 사랑스러운 햇빛이 스밉니다. 찬찬히 키웁니다. 하나씩 돌봅니다. 오래도록 토닥입니다. 앞장서서 이끌 사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끌어갈 수 있어요. 오늘은 아이가 이끌어요. 모레는 어른이 이슬받이로 나아갑니다.


ㅅㄴㄹ


씨·씨톨·씨알·씨앗·알씨·피·피톨·피알·밑뿌리·밑싹·밑씨·밑자락 ← 유전자, 디엔에이


가꾸다·일구다·가르치다·갈치다·기르다·이끌다·끌다·끌고 가다·끌어가다·끌힘·돌보다·돌봐주다·돌봄길·돌봄손·돌아보다·보살피다·보듬길·보듬다·토닥이다·품다·불빛·불빛줄기·빛줄기·횃불·사랑·사랑멋·사랑맛·살리다·살려내다·살려주다·살림·살림하다·살림길·어버이·키·키잡이·키우다·키움꽃 ← 육성(育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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