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가방비 아침길 (2023.8.20.)
― 서울 〈책방 서로〉, 〈북스피리언스〉, 〈사슴책방〉, 〈무슨서점〉
구름이 짙은 늦여름에 서울 연남동 골목을 거닙니다. 고흥으로 돌아가기 앞서 마을책집에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어젯밤은 성산동 이웃님 집에서 묵으면서 성미산을 한밤에 거닐어 보았습니다. 아무리 매캐하고 시끄러운 서울 한복판이어도 작은새가 이 뒷동산에서 노래하더군요.
먼저 〈책방 서로〉 앞에 닿습니다. 아침 열 시가 조금 넘었으니 아직 안 열 만하겠지요. 그러려니 여기면서 오늘 새벽에 문득 쓴 노래 하나를 옮겨적습니다. 책집 미닫이에 슬쩍 얹습니다. 이 가까이에 다른 책집이 있다고 하기에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북스피리언스〉로 찾아옵니다. 이곳도 아직 안 엽니다. 이제 열한 시 즈음이지만, 서울사람한테는 퍽 어를 수 있습니다. 시골내기는 늦어도 새벽 네 시에 하루를 열지만, 서울은 해가 다르게 움직이는걸요. 다시 미닫이에 노래 한 자락을 꽂아놓습니다.
이 언저리에 여러 책집이 있는데 설마 한 군데도 아침에 안 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책집 기스락을 거닐면서 마을빛을 누리기만 해도 즐거우리라 봅니다. 어느덧 〈사슴책방〉 곁에 섭니다. 〈사슴책방〉 둘레에서 살거나 일하는 분들은 길에서 담배를 꽤 태웁니다. 한때 적잖은 이들은 길이건 집이건 버스이건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태웠으나, 이제는 이렇게 하는 이는 확 줄었어요.
구름하늘은 이따금 가랑비를 뿌립니다. 가랑비가 뺨을 간질이면 “그래, 그래, 너희가 이 땅을 씻고 적시니 언제나 고마워.” 하고 속삭입니다. 바야흐로 〈무슨서점〉이 깃든 골목을 걷습니다. 〈무슨서점〉까지 네 군데 마을책집은 일러도 낮 두 시가 넘어야 여는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타려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옹기종기 여러 마을책집이 모인 연남동 골목을 한참 걷다가, 길에서 노래를 옮겨적다가, 이제는 시외버스를 타러 움직입니다.
덜컹거리는 큰쇠는 땅밑을 한참 달립니다. 언제 들어도 낯선 ‘센트럴시티’에 닿아 비로소 등짐을 내립니다. 이웃나라 마실꾼도 자주 드나드는 곳에 누가 ‘센트럴시티’처럼 ‘시골스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북적이는 한복판에서 땀을 들이다가 곱씹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시골스럽게 ‘한봄·한봄길·한봄마루’라든지 ‘한마루’ 같은 이름을 붙인다면, 여러 나라 이웃사람도 한결 새롭게 서울 한켠을 바라보고 맞이할 만하리라고 봅니다.
서울을 벗어나 시골로 달리는 버스는 한갓집니다. 몇 사람 안 탑니다. 걸상에 푹 기대어 꿈누리로 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