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임을 잊은 2024.10.17.나무.



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임을 잊은” 모습일 수 있어. “임을 잊을” 적에 어떠한지 알아보라는 뜻이야. 네가 걸어가는 곳으로 “임을 잊은” 사람이 수두룩할 수 있어. 네가 언제 어디에 있든 너부터 “임이란 늘 우리 마음에 있는” 줄 알아보라는 뜻이야. 네가 만나는 사람이 “임을 잊은” 눈일 수 있어. 네가 네 이웃한테 “임을 이야기해서 잇는” 길을 펴야 한다고 알리려는 뜻이야. 네(내)가 너(나)로서 이곳에 있기에 ‘임’이야. 있고 이으며 이루고 일어나는 빛인 ‘임’이면서,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한 ‘님’이란다. “임을 잊은” 사람은 아직 오늘 이곳에서는 바보일 테지. 어제까지 바보였을 수 있고, 모레에도 바보일 수 있어. 다만, “임을 잊은” 이들은 스스로 임을 잊은 줄 몰라. 스스로 임·님인 줄 모르기도 하고. 그러면 “임을 잊은 사람”을 바라보는 너는 스스로 임·님인 줄 알아볼까? 너부터 스스로 이곳에 있고 이곳을 일구고 이곳을 이루고 이곳을 잇는 이야기를 바로 네 삶에서 일으켜서 네 살림이 일어서는지 돌아보렴. 봄에 새잎을 내고 가을에 노랗게 물들이는 가랑잎을 내는 부채나무는 어떤 임·님일까? 봄에 아기 손톱보다 조그마한 몸으로 깨어나더니 가을에 어른 손마디보다 굵게 자라서 알을 낳는 사마귀는 어떤 임·님일까? 겨울에 가뭇없이 사라지는 듯한 나뭇잎이며 꽃잎은 어떤 임·님으로 새봄에 새롭게 태어날까? 임을 잊은 사람은 입을 마구 놀려. 스스로 임인 줄 모르기에, 나뭇잎이나 꽃잎을 담고 닮은 말을 나누거나 짓거나 들려주지도 못하고, 듣거나 읽거나 익히지도 않는단다. 스스로 임인 줄 알면서 임을 바라보기에 배우고 생각하고 살아숨쉬지. 입만 산 사람은 먹고 뱉기만 할 뿐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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