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에 Historie 12
이와키 히토시 지음, 오경화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10.2.

눈물을 밟고서 걷는다


《히스토리에 12》

 이와아키 히토시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2024.8.30.



  지난 2019년에 《히스토리에 11》를 읽고서 어쩌면 마지막일는지 모른다고 여겼는데, 뜻밖에 《히스토리에 12》(이와아키 히토시/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2024)을 만나면서 놀랍고 반갑습니다. 언제나 설마 이 책으로 끝이려나 싶거든요. 아니, 열두걸음에서 멈추어도 뒤끝은 없을 만합니다.


  그림님 이와아키 히토시 님이 도움이를 곁에 둔다면 한결 빠르게 이야기를 펼칠는지 모릅니다만, 줄거리와 이야기뿐 아니라 붓끝 하나까지도 낱낱이 여미면서 선보이려는 뜻이 워낙 크다고 느껴요. 더 빠르거나 더 많거나 더 오래 들려주지 못 하더라도, 그림꽃 하나마다 “왜 이 줄거리로 이렇게 그리는가?”를 이웃이 저마다 느끼고 헤아리기를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히스토리에》는 이미 첫걸음부터 “눈물을 밟고서 걸어가는 길”을 드러냈습니다. 열두걸음에 이르는 낱책에는 열두살림이 드러나고, 열두눈물과 열두웃음이 어울려요. 오직 사랑으로 짓는 살림집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눈물이 있고, 살림집하고 등진 힘나라 우두머리가 우쭐거리는 웃음과 눈물이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칼부림을 제아무리 대단하게 펴더라도 한낱 파리목숨일 수 있는 웃음과 눈물을 드러냅니다. 불쏘시개처럼 칼받이(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숱한 사람들이 흘릴 눈물이 있고, 그저 땅을 일구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싶지만, 짝꿍(남자)을 싸울아비로 빼앗긴 여느 순이(여자)가 나라지기를 바라보는 눈물이 있어요.


  그림꽃 《히스토리에》를 읽고 싶다면, 이 그림꽃부터 읽거나 이 그림꽃만 읽다가는 “왜 이렇게 그리지?” 하며 알쏭달쏭하게 마련입니다. 《기생수》부터 읽고, 《칠석의 나라》에 《눈의 고개》에 《레이리》를 먼저 읽고서 《히스토리에》를 읽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다 다른 이야기는 다 다른 사람과 다 다른 삶길을 짚되, 언제나 하나인 눈길과 눈빛과 눈물을 바탕으로 삼습니다.


  어떤 이는 이웃사람 피눈물을 즈려밟으면서(지르밟으면서) 걷습니다. 어떤 이는 눈물꽃을 어루만지면서 터덜터덜 걷습니다. 어떤 이는 눈물 하나 모르면서 쇳덩이(자동차)로 부릉부릉 달릴 뿐입니다. 어떤 이는 낮에는 들풀을 곁에 두면서 걷고, 밤에는 별바라기로 걷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걸음일까요. 우리는 이 길을 왜 걸을까요. 어쩔 수 없이 끌려갔기에, 윗놈이 시키는 대로 걸어야 하는 굴레인가요.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스스로 허수아비에 노리개로 뒹구는 수렁인가요.


  미움이라는 마음이 가득하면 그만 스스로 불타오르면서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사랑이라는 마음이 가득하면 언제나 스스로 포근하면서 온누리를 환하게 비춥니다.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누가 우리 둘레에 이웃이며 동무로 있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겨울에 사락사락 덮는 흰눈을 꾹꾹 밟으면서 걸을 수 있습니다. 봄꽃이 돋아나는 숲길을 천천히 걷을 만합니다. 북새통을 이루는 서울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면서 걸을 수 있습니다. 이제 아무도 없는 시골 논둑길을 그저 호젓이 걸을 만합니다. 동무하고 나란히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골목을 걸을 수 있습니다. 새랑 이웃하면서 서로 휘파람을 주고받는 하루길을 걸을 만합니다. 어느 길이건 스스로 골라서 나아갑니다.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찾고 가꾸면서 품는 길입니다.


  《히스토리에》는 누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삶길을 보여줍니다. 영어 ‘히스토리’란 ‘he + story’입니다. 이 낱말에서 ‘he’란 “그냥 사내’가 아닌,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나 나리를 가리킵니다. ‘그·그들’이란 시골에서 논밭을 돌보고 아이를 돌보는 수수한 사내가 아닌, 논밭을 모르면서 등진 채 총칼을 움켜쥐면서 늘 싸움만 일삼으면서 힘·이름·돈으로 둘레를 짓밟으려고 하는 멍청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히스토리(history) = 싸움 발자취 = 멍청난 꼰대수렁 = 삶이 없이 죽음만 춤추는 얼뜬짓’이라고 볼 만합니다.


  이와 달리 ‘스토리(story)’는 ‘이야기’입니다. ‘히(he)’도 ‘허(her)’도 아닌 그저 ‘삶길·살림길 = 이야기’예요. 너도 나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순이도 돌이도 살림하며 사랑하는 이야기예요. ‘이야기’에는 아프거나 슬픈 눈물도 있고, 즐겁거나 기쁜 웃음도 있어요. 서로 잇고 읽고 함께 있는 이야기를 사랑으로 품을 적에 아름답게 사랑으로 선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그대는 결고 자기 마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런 여인이오!” “아아, 그렇구나. 그건 맞을지도. 당신은 다른가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은 안 하나?” “나도 내 마음에 거짓말은 하지 않소!” “거짓말쟁이.” (37쪽)


“나는 답을 알고 싶다. 아니, 한번 보고 싶어. 이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게 좋은지, 아니면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 상태가 좋은지.” (55쪽)


“위대한 왕이시여, 당신만 한 인물의 숨통을 끊은 자가 이렇게 하찮은 소인배라 미안하오. 허나, 이건 훨씬 예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일인 것 같기도 하오.” (86쪽)


‘그래, 내 임무, 역할은, 한 명의 왕을 새롭게 낳는 거였어. 덩치가 좀 작은가? 하지만 이렇게 올려다보니, 성스럽게까지 느껴져. 나 같은 놈과 닮았을 리가 없지.’ (107쪽)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좋겠어.” “좋지. 갈래?” “하지만 나는 에우로파 곁으로 가줘야 해.” (238쪽)


#岩明均 #ヒストリエ


그녀의 설명은 논리정연하니, 나의 막연한 의문에 답이 될 거란 내 기대가 과했던 거겠지

→ 이분 말씀은 뛰어나니, 내가 궁금한 곳을 풀어주리라 바랄 수 없었겠지

→ 이분은 찬찬히 말씀하니, 내가 모르던 곳을 풀어주기는 어렵겠지

16쪽


이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게 좋은지, 아니면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 상태가 좋은지

→ 온누리가 하나여야 나은지, 아니면 뿔뿔이 있어야 나은지

→ 온나라가 하나여야 하는지, 아니면 흩어져야 하는지

55쪽


위대한 왕이시여, 당신만 한 인물의 숨통을 끊은 자가 이렇게 하찮은 소인배라 미안하오

→ 훌륭한 임금이여, 그대만 한 분 숨통을 끊은 이가 이렇게 하찮은 놈이라 잘못했소

→ 빼어난 분이여, 그대만 한 사람 숨통을 끊은 이가 이렇게 하찮은 놈팽이라 안됐소

86쪽


허나, 이건 훨씬 예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일인 것 같기도 하오

→ 그러나, 훨씬 예전에 잡힌 일인 듯하기도 하오

→ 그러나, 훨씬 예전부터 선 일인 듯싶기도 하오

86쪽


생포해서 실토하게 해

→ 붙잡아서 뱉어야 해

→ 잡아서 밝혀야 해

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